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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얻으려면 버려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오늘의 정치에 대해 점잖게, 그러나 아프게 충고했다.

金추기경은 그를 방문한 김중권(金重權) 민주당 대표에게 정치인들이 과연 국민의 소리를 듣고 있느냐고 물었다.

모두가 다음 대권 생각에 머리가 꽉 차 국민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민생은 저버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작금의 정치판을 볼 때 과연 정치가 존재하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국민이라면 누구든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여당은 말로는 야당과의 협력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검찰을 내세워 야당을 몰아세운다.

수적 우위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해 의원을 꿔주고 정체성이 다른 정당끼리 거리낌 없이 손을 잡는다.

국가의 한 해 예산에 버금가는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그 상당부분이 회수불능의 사태에 빠졌는데도 정부에서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이러고도 개혁과 상생을 부르짖으니 정치인 말을 믿을 수 없게 된다.

金추기경이 "정직이 가장 중요하다" 고 굳이 강조한 속뜻을 이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의 돌아가는 양상은 2년 후의 대권향방에 매달려 있다.

여당은 마치 강한 정치만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것인 양 정치판을 험하게 몰아간다.

정부는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막는 데만 온갖 힘을 쏟는 인상이다.

이를 위해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듯한 여러 기도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 밖에서 보기에도 여간 걱정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민심의 소리를 듣느냐는 金추기경의 지적에 여당 대표는 그저 4대 개혁과 공존의 정치를 되뇌고 있으니 인식의 격차가 그렇게 클 수 없다.

金추기경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상생과 신뢰의 정치를 거듭 주문했다. "노벨상도 탔으니 국민에게서 신뢰받고 평가받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는 것이다. "얻으려면 버려야 한다" 며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먼저 마음 비우기를 원한 金추기경의 기도는 강한 정부-강한 정치를 내세우는 金대통령과 여당에는 너무 동떨어진 주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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