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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김우중씨 수사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우중(金宇中)전 대우그룹 회장의 불법 경영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는 조사 시기 등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한국형 재벌체제의 종언을 선언하는 전환기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우 수사' 의 내용은 두 가지다.

우선 金전회장은 영국 내 비밀계좌인 브리티시 파이낸셜 센터(BFC)를 자금 조달 사령탑으로 해 불법적으로 국내 자금을 유출했으며, 그 과정에서 대우그룹 전문경영인들과 함께 순이익을 부풀리는 등 분식회계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수십개의 계열사가 조직적으로 불법 경영을 했다는 점에서 그룹체제의 모순이, 또 전문경영인들은 오너의 탈법 경영에 '공범' 이 됐다는 점에서 황제(皇帝)경영의 모순이 각각 드러났다.

이런 점에서 金전회장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와 전문경영인들의 구속은 그룹형 경영과 황제 경영을 두 축으로 하는 한국형 재벌체제를 더이상 지속시키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물론 BFC의 존재와 불법적인 활동 양상은 진작부터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왜 하필 지금이냐" 라는 수사 시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경제 위기에 따른 국민의 불만 달래기용 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 수사는 국내 자금의 불법적인 해외 유출과 회계장부의 분식 등 명백한 경영 사기에 대한 수사다.

물론 이제까지의 기업 풍토가 그랬다는 점에서 대우를 '희생양' 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령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10~15%는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는 연구 조사도 있다.

그러나 대우는 실패한 재벌이란 점에서 이런 시각 역시 설득력이 약하다.

무엇보다 金전회장과 대우로 인해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국민 경제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으며, 협력업체를 포함해 수십만명의 대우 관련 종업원이 고통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대우 수사는 이제까지 한국형 재벌의 병폐였던 편법 경영과 황제 경영에 커다란 경종을 울릴 게 분명하다.

특히 전문경영인에게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 같다.

지금까지의 오너와 전문경영인은 재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종(主從)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너의 지시를 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 그대로 따르면 승진을 보장받았다.

가까이는 한보철강과 현대그룹, 멀리는 국제.율산그룹의 처리 과정에서 전문경영인들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로 7명의 전문경영인이 한꺼번에 구속된 예는 전무했다.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질 경우 대우그룹의 전문경영인들은 엄청난 재산상 손실까지 보게 된다.

대표이사뿐 아니라 상법상 등기 이사도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따라서 전문경영인들은 앞으로는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오너의 명령을 따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국회계연구원 김일섭 원장은 "대우 수사로 인해 오너 중심체제는 전문경영인체제로 한걸음 나아갈 것" 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대우 수사는 이제까지의 한국형 재벌 조직을 투명.책임경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재벌체제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다만 미국의 거대 기업이나 일본의 계열 조직처럼 재벌이 아닌 다른 조직으로 변화시킬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김영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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