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중국 황실·역사이야기 '강희제' '옹정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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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동시 출간된 신간 『강희제』와 『옹정제』를 내쳐 읽고 책장을 덮으며 어느 광고의 카피를 떠올렸다.

"훔쳐서라도 읽으라. " 그렇다. 미국과 일본의 축적된 동양사학의 정점에 있는 고전이면서 흥미만점의 책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두 책은 서술방식이 딱딱한 역사서류(類)와는 천양지차다.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한 위대한 군주가 남긴 자투리 자료 3백47개를 정교하게 짜깁기해 '황제가 들려주는 자서전' 으로 꾸몄다.

황제와 독대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반면 『옹정제』는 구수한 옛날얘기 스타일에 엄청난 역사정보를 녹여낸 탁월한 역사전기물이다.

'행복한 책읽기' 도 두 책의 리뷰를 강희제 - 옹정제 부자(父子)사이의 가상 대담의 방식으로 했다.

▶ 강희제〓짐은 조너선 스펜스의 『강희제』를 읽고 매우 놀랐다는 소회부터 밝여야겠네. 단 한곳도 내 목소리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지. 미국에서는 1971년에 출판됐으나 한국어로 30년 만에 번역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네. 자서전에 써있듯 본디 짐은 나의 치세 시절부터 베이징에 머물던 예수회 신부들과 그들이 전하는 서양문물에 관심이 많았으나, 세월이 바뀌어 미국학계의 중국사 연구 스칼라십이 이토록 높다는 점은 미처 예상치 못했네.

▶ 옹정제〓선제(先帝)께서도 놀라셨다지만, 일본의 역사학자 미야자키의 『옹정제』도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사실 저는 61년간 재위하셨던 선제와 건륭제 사이에서 13년간 통치를 했고, 따라서 막간 간주곡 정도로 취급받아왔습니다.

미야자키의 이 책은 저를 중국 인민의 스타로 만든 계기였고, 일본의 이른바 옹정학(學)의 서곡에 해당하는 저술이기도 하답니다.

▶ 강희제〓농담이네만, 나 역시 강희학이라는 말은 들어본 바 없지만 옹정학은 들어본 바 있어 유감이네. 천자(天子)인 내 아들에게 축하를 보내야 할까?

▶ 옹정제〓송구스럽습니다.

사실 옹정학은 선제께서 통치를 위한 기본 수단으로 시작했고, 제가 본격적으로 시행했던 지방관료와 주고받은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인 주접(奏摺)에 대한 연구로 출발했습니다.

▶ 강희제〓옹정학은 청대사뿐 아니라 근세 중국의 풍속에서 관료제에 대한 이해의 관건으로 등장했다는 점도 재미있지. 2년전 중국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사극이 옹정제였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라고 판단되네.

▶ 옹정제〓아마도 그것은 선제와 저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학자 고유의 임무일 것입니다.

『옹정제』를 옮긴 한국의 소장 역사학도가 던진 말은 인상적이죠.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적 인물이란 후세의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내 기억을 상기시켜줬기 때문이다. "

▶ 강희제〓본격적으로 얘기를 해봄세. 즉 짐에 이어 내 아들이 펼쳤던 통치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점,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느냐는 점 등 말일세.

▶ 옹정제〓좋습니다.

우선 저는 약간 다른 얘기, 즉 두 책에 자세히 언급된 권력승계 문제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선제께서 황태자로 책봉했던 저의 둘째 형 이아거(二阿哥)를 폐위시키고 임종 직전 둘째 아들인 저를 지목하신 이유가 지금도 궁금합니다.

실은 저의 즉위 직전 중국에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본래 선제께서는 손바닥에 '十四' 라고 썼다는 것, 그러나 제 측근의 농간이 글자를 변조해 '于四' , 즉 '넷째아들 에게(于)' 로 했다는 악소문까지 있었습니다.

▶ 강희제〓그랬던가?

모두 헛된 말이네. 내가 『강희제』 마지막의 상유(上諭, 유언)에서 '오장육부를 보여주는 것처럼 밝힌다' 고 한 대로 짐은 천하의 존귀함과 부유함을 다 누렸으나 이아거를 두차례에 걸쳐 폐위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번민을 가져보았네. 동성애의 추잡함을 즐기고, 못된 패거리들의 꼬드김 때문에 황태자가 정치보스가 되어 농간을 부리게 되는 권력 자체가 무섭더구먼.

▶ 옹정제〓그러면 저를 선택하신 것은 권력의 주변에서 쓴맛.단맛을 본 저의 40년 경험을 높이 산 때문이었을까요?

▶ 강희제〓미야자키는 그렇게 썼더구먼….

▶ 옹정제〓미야자키는 저를 '역사상 가장 유능한 선의의 독재군주' 라고 평가했습니다.

공정사회 건설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만주인 특유의 인내심으로 관철시켰으나, 결정적으로 1인 치하의 한계를 가졌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강희제〓그건 20세기 서양 민주주의 이념의 잣대로 우리를 재단한 것뿐이야. 짐도 이민족을 오랑캐 문화로 보는 한족(漢族)문화의 편협함을 견제하고, 만주족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강조했네. 내 치세에 천하의 태평을 가져왔다는 스펜스 교수의 말이 고맙구먼.

▶ 강희제.옹정제〓제갈량의 말대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정성으로 나랏일을 돌보았던 황제였다고 자부해도 될까?

판단은 역시 후세의 몫이네만.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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