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 홍콩 강연장마다 '가오미'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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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홍콩은 지난달 29일부터 나흘 동안 '가오싱젠 홍역' 을 호되게 치렀다.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반체제 냄새를 물씬 풍기는 망명작가' 라는 유명세는 역시 대단했다.

반응은 빙탄(氷炭)이 반반씩 섞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쪽에서는 열렬한 '가오미(高迷.가오싱젠 팬)' 들이 연일 강연장을 메운 반면 행정당국은 침묵으로 그를 냉대했다.

그럼에도 가오의 홍콩행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을 등진 작가, 중국 정부 주장대로라면 '정치적 목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작가' 가 중국 영토인 홍콩에 발을 디뎠다는 그 상징성 때문이다.

가오의 이번 홍콩.대만 방문 일정 가운데 유독 홍콩 일정에 언론이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다.

연출가이자 화가이기도 한 가오, 그의 자질에 또 하나를 추가한다면 그건 '탁월한 정치적 감각' 일 듯하다. 가오의 이번 홍콩방문을 밀착 취재하면서 가장 확연하게 느낀 점이다.

우선 그는 '자신을 초청한 친우들' 을 곤란하게 만들 만한 어떤 언행도 하지 않았다. 세차례에 걸친 강연 중 정치적 발언은 전혀 없었다. 언론사의 인터뷰도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 정치적 화제가 거론될 수 있다는 것이 거절 이유였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정치적이다.

그러나 가오가 진짜 정치적인 점은 '하지 않으면서 하는' 그의 말하기 방식에 있었다. 그는 결코 정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 발언을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견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기자1〓홍콩 정부로부터 정치적 압력은 없었나.

가오〓 "여기는 대학(홍콩중문대)이다. 문학 얘기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기자2〓망명작가에게 정치적 견해를 묻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정치적 태도를 밝힐 수 있나.

가오〓 "모든 개인들은 정치적 태도를 갖고 있다.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예외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곳(홍콩)은 미묘한 곳이다. 지금은 적절한 상황이 아니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모두 질문을 피해 나간 답변이지만 사실은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음' '난 중국 당국이 좋아하지 않는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음' 을 모두 얘기한 셈이다.

노벨문학상은 역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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