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미국의 북한 불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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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리처드 아미티지는 머잖아 미국 국무부 부장관에 취임해 부시 정부의 한반도정책에 큰 발언권을 행사할 사람이다.

그는 지난 8년동안 클린턴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켜보면서 "저게 아닌데" 라는 공화당류의 불만을 쌓아왔다.

그의 대북(對北) 강경발언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부시 정부 안보팀의 색깔과도 일치한다.

아미티지의 위치를 고려한다 해도 그의 최근 발언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너무 과민하다.

아미티지는 이미 1999년 5월 발표한 대북정책에 관한 보고서에서 "지금은 포용정책으로 알려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 이라는 표현을 써서 햇볕정책이라는 명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아미티지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경제.사회.문화분야에서는 남한의 비정부 차원의 접근엔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남한과의 정치적인 화해는 거부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고 제네바 합의에 응한 것은 핵무기와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동북아시아의 안보환경은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부터 1년8개월 전에 나온 아미티지 보고서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한반도정세와, 특히 최근에 전해지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생각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미티지가 한국의 국회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햇볕정책이라는 명칭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하고 상호주의를 강조했다고 해서 그게 그대로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수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안보팀의 한 사람이다.

부시 정부의 안보팀이 진용을 완전히 갖추는 것은 2월 중순 이후로 예상된다. 따라서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작업은 일러야 3월부터나 시작된다.

그리고 3월 중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정책검토의 결론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설명할 지난해 6월 이후의 한반도정세와 달라진 김정일이 적지않게 반영될 것이다.

분명히 부시 정부의 등장은 햇볕정책에는 큰 시련이요, 도전이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의 포기만을 북.미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요구했다.

핵문제는 제네바합의로 잠정적으로 매듭지어지고 미사일문제는 지난해 가을 북한의 양보시사로 타결 직전까지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북.미관계 개선의 조건을 일단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보의 상호주의와 핵.미사일의 투명성 외에 가시적인 긴장완화 조치로 남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상호감축과 북한군의 후방 재배치 같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인권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런 순서로 진행되면 그것은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산 넘어 산, 金대통령에게는 다된 밥에 재뿌리기 같은 사태다.

그래서 金대통령의 미국방문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공화당 사람들의 완고한 북한 불변론(不變論)을 바꿔야 한다.

한반도문제 베테랑들에게 뉴 김정일의 천지개벽론을 파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개발의 의욕을 불태우는 그들에게 북한과의 관계정상화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해결돼버리면 NMD 개발의 명분이 흔들린다.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上海) 감동은 북한을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이끄는 동인(動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개혁에 필요한 결정적 조건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해서만 기대할 수 있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구들의 지원이다. 중국의 경제개혁에는 화교자본이 절대적 기여를 했다.

20년간 중국에 투자된 3천76억달러의 해외자본의 70%가 화교자본이다. 북한에는 국제금융기구들이 화교자본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북한은 미국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개혁이 가능하다. 金대통령에게 북.미관계를 중재할 짐이 지워졌다.

金대통령이 부시에게 한반도에 힘의 외교를 적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북한이 변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납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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