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선수들 틈에서 중거리슛을 펑펑 날린다. 골문 앞에선 악착같이 공중볼 다툼도 한다. 힘이 세어 별명이 '아줌마'다.
서울 중랑구 신묵초등학교 6학년 조선화(12)양. 유소년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동원컵 왕중왕전 본선에 오른 48개 팀 선수들 가운데 유일한 여자 주전선수다. 국내 초등학교 혼성축구팀에 여자 선수가 포함되는 일은 가끔 있지만 전국 대회 본선에서 주전으로 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지난 18~19일 수원 월드컵 보조구장에서 열린 본선 조별 리그에서도 팀의 중앙 수비를 책임졌다.
조양이 축구를 시작한 건 3학년 때. 오빠 정학(13.도봉중1)군을 따라 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공을 차면서 친구들이 많이 생겨 참 좋아요." 암팡진 말투에 희미하게 이북 억양이 묻어난다. 조양의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군. 두만강이 보이는 북녘 끝자락이다. 탈북해 서울에 온 지 만 4년째다.
"탄광에서 일하던 애 아버지(조진철.가명.43)가 1998년 2월에 먼저 중국 옌볜으로 갔어요. 제가 석 달 뒤에 뒤따라 두만강을 건넜고요.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 것들만 남겨두고…." 어머니 장명자(40.가명)씨는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리다. 일년 남짓 친척 집과 보육원을 전전하던 남매는 99년 말 외삼촌(29)을 따라 탈북했고, 가족은 옌볜에서 상봉했다.
조양 가족은 2000년 7월 제3국을 통해 한국에 왔다. 서울 노원구의 방 두 칸짜리 영구 임대아파트가 그들의 보금자리다. 아버지 조씨가 일용직 노동을 하고, 어머니 장씨가 보험설계사와 식당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 왔다. 최근 장씨가 중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어렵던 살림이 더욱 쪼들린다. 형편을 잘 아는 남매는 친구들이 신다 버리는 축구화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 신을 정도로 알뜰하다.
국내 선수 중에 홍명보와 송종국을 특히 좋아한다는 조양의 꿈은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선수로 뛰는 것. "외국에 많이 나가니까 고향에도 갈 수 있잖아요. 고향 동무 중에 운아랑 상국이가 제일 보고 싶어요."
그를 지도해온 신묵초등학교 배동 감독은 "체격(1m55cm.43㎏)이나 지구력, 스피드가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아 주전 몫을 톡톡히 해 왔다"면서 "여자축구로 가면 발군의 실력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양은 여자축구 명문인 서울 오주중학교로 진학할 예정이다. 오주중은 조양의 형편을 감안해 학비 등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글.사진=강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