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희망의 슛' 날리는 탈북 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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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자 선수들 틈에서 중거리슛을 펑펑 날린다. 골문 앞에선 악착같이 공중볼 다툼도 한다. 힘이 세어 별명이 '아줌마'다.

서울 중랑구 신묵초등학교 6학년 조선화(12)양. 유소년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동원컵 왕중왕전 본선에 오른 48개 팀 선수들 가운데 유일한 여자 주전선수다. 국내 초등학교 혼성축구팀에 여자 선수가 포함되는 일은 가끔 있지만 전국 대회 본선에서 주전으로 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지난 18~19일 수원 월드컵 보조구장에서 열린 본선 조별 리그에서도 팀의 중앙 수비를 책임졌다.

조양이 축구를 시작한 건 3학년 때. 오빠 정학(13.도봉중1)군을 따라 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공을 차면서 친구들이 많이 생겨 참 좋아요." 암팡진 말투에 희미하게 이북 억양이 묻어난다. 조양의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군. 두만강이 보이는 북녘 끝자락이다. 탈북해 서울에 온 지 만 4년째다.

"탄광에서 일하던 애 아버지(조진철.가명.43)가 1998년 2월에 먼저 중국 옌볜으로 갔어요. 제가 석 달 뒤에 뒤따라 두만강을 건넜고요.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 것들만 남겨두고…." 어머니 장명자(40.가명)씨는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리다. 일년 남짓 친척 집과 보육원을 전전하던 남매는 99년 말 외삼촌(29)을 따라 탈북했고, 가족은 옌볜에서 상봉했다.

조양 가족은 2000년 7월 제3국을 통해 한국에 왔다. 서울 노원구의 방 두 칸짜리 영구 임대아파트가 그들의 보금자리다. 아버지 조씨가 일용직 노동을 하고, 어머니 장씨가 보험설계사와 식당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 왔다. 최근 장씨가 중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어렵던 살림이 더욱 쪼들린다. 형편을 잘 아는 남매는 친구들이 신다 버리는 축구화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 신을 정도로 알뜰하다.

국내 선수 중에 홍명보와 송종국을 특히 좋아한다는 조양의 꿈은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선수로 뛰는 것. "외국에 많이 나가니까 고향에도 갈 수 있잖아요. 고향 동무 중에 운아랑 상국이가 제일 보고 싶어요."

그를 지도해온 신묵초등학교 배동 감독은 "체격(1m55cm.43㎏)이나 지구력, 스피드가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아 주전 몫을 톡톡히 해 왔다"면서 "여자축구로 가면 발군의 실력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양은 여자축구 명문인 서울 오주중학교로 진학할 예정이다. 오주중은 조양의 형편을 감안해 학비 등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글.사진=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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