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미국] 下. 내치 어떻게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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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닮고 싶어하는 인물은 최근 엉덩이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고 퇴원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두사람은 닮은꼴이다.

레이건은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지사, 부시는 둘째로 많은 텍사스주의 주지사였다. 또 두사람 모두 '통 큰 정치' 를 선호한다.

사소한 것은 참모나 부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결정적인 사안들만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반대파들로부터 "대통령직을 맡기엔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 고 공격받는 것도 똑같다.

그래서 부시가 국가미사일방위(NMD)계획에 집착하는 것도 이 계획의 뿌리가 레이건의 '별들의 전쟁(Star Wars)' 계획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있다. 그만큼 부시는 레이건을 배우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시가 레이건처럼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부시는 국내 상황만을 따져볼 때도 1981년 출범 당시의 레이건보다 조건이 훨씬 열악하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인기가 바닥이었던 지미 카터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았다. 따라서 대충 해도 '카터보다는 낫다' 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시에게 바통을 넘긴 빌 클린턴은 갖가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퇴임 당시 지지율이 70%에 육박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인기있고 '영리' 했던 대통령이다.

게다가 부시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보다 전국 득표수가 54만표나 적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건 공화당이 지배하는 연방대법원 때문이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그는 출발부터 권력의 확고한 기반이 없는 셈이고 조금만 잘못하면 "그것봐, 우린 대통령을 잘못 뽑았어" 라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로선 괴로운 일이다.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는 거투드 힘머파브라는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가 지난해 '한 국가 두 문화' 라는 책을 출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사회가 완전히 둘로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제43대 대선은 이런 현상을 극적으로 입증해 보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상원과 하원의 공화당.민주당 의석비율, 백인과 유색인종,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거의 절반으로 갈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의 성패는 이런 분열을 어떻게 통합으로 이끄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부시는 레이건처럼 우선 참모들에게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레이건은 참모들보다 지적 능력은 떨어져도 시정연설을 통해 국민을 휘어잡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부시에게선 이런 능력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시가 딕 체니 부통령 등 강경파투성이인 참모들을 과연 통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부시는 이번주 새로운 교육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바우처 시스템(학비보조제도)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인정하고 1천5백달러씩의 개별 지원금을 주는 것이다.

민주당의 반대가 강경한 가운데 부시의 대의회 관련 첫 작품이다. 부시는 또 공약인 감세정책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의료복지 정책이나 국토개발계획 등에 대해서도 민주.공화당은 정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시의 내치(內治)는 주변 여건상으로만 보면 전망이 회색이다. 그러나 그런 악조건을 극복해 내면, 그래서 그의 말대로 통합자(Uniter)로 인정을 받으면 부시는 레이건과 조금 더 닮은 모습이 됐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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