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 일제징용 희생자 중국서 진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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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역만리 이곳에 함께 끌려왔는데, 누구는 이렇게 쓸쓸히 묻혀 있고 나는 광복 후에 귀국해서 자식까지 낳고 살았으니…. "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海南)섬 싼야(三亞)시 외곽 조선촌(朝鮮村) 한국인 징용자 유해 발굴 현장.

18세 청년이던 1941년부터 해방 직후까지 이 섬에서 징용생활을 한 장달웅(張達雄.78)씨는 땅속에서 잇따라 나오는 유골을 보면서 계속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경성상고 3학년 재학 중 한 일본인 회사의 사원 모집에 응했다가 이곳으로 끌려와 부근 철광에서 채굴 작업 등을 했다.

"이분들이 조선남방보국대(朝鮮南方報國隊)라는 이름으로 끌려와 일하던 곳은 철조망을 두르고 밖에서 보지도 못하게 했어요. 해방을 앞두고 일본군이 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었는데…. "

당시 이들과 다른 곳에서 비교적 덜 혹독한 징용생활을 했다는 張씨는 "보국대 사람들은 휴일도 없이 하루 한끼 죽만 먹으면서 일본군 감시하에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고 회상했다.

이날 한국인 징용자 1천여명이 집단 매장된 조선촌의 발굴 현장에서 50여년 만에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제가 열렸다.

43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수감 중 이곳에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희생된 사람들이다.

조계종.태고종 스님 15명이 의식을 진행하는 네시간여 동안 벌판에는 열대의 모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 10여m 떨어진 유골 발굴 현장은 당시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50여㎝ 깊이로 파낸 현장에는 전신의 형태를 유지한 유골들이 1m 간격으로 나란히 누워 있었다.

둔기에 얻어 맞은 듯 두개골이 함몰되기도 했고, 숨질 당시 묶인 듯 철사가 목에 감긴 유골들도 있었다. 지난 11일부터 발굴을 시작한 충북대 발굴팀은 20일까지 36구의 유골을 찾아냈다.

"유골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억울하게 숨진 선조들의 영혼을 뒤늦게나마 달랠 수 있게 돼 참 다행입니다."

현지에서 과일 농장을 운영하다 2년 전부터 이곳에 추모공원을 조성 중인 신우농장 서재홍(徐在弘.61)사장은 "비용 마련이 쉽지는 않지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한구 한구씩 계속 발굴해 나갈 계획" 이라고 말했다.

유골들은 지난 15일 徐씨가 공원내에 미리 완공한 납골당에 안치된다.

임원 여덟명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김종대(金鍾大)회장은 "유족을 대신해 이 일을 하고 있는 신우농장에 감사드린다" 며 "정부도 적극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하이난섬〓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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