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 고문 원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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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작년 늦은 봄인 4월 16일, 텍사스 한국전 추념비 제막식에 앞서 주지사 집무실에서 당신과 나눴던 시간을 나는 소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유년시절이던 50년 전, 한국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우리 두 국민이 함께 치러야 했는가를,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한.미 동맹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함께 되새겼었습니다.

당신은 그 자리에서도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북한 미사일 문제는 중대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장거리 야포의 사정거리 안에서 매일 생활하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에게는 미사일의 위협을 보다 심각하게 실감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나는 설명했습니다.

20분의 짧은 대화였지만 초면에 격의없이 의견을 교환하던 당신의 친화력이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인물이라는 나의 직관적 판단을 한국 동료들에게 전했습니다.

오늘 당신께서 대통령으로 취임하시는 것을 축하하면서 한국에 대해 꼭 유의해 주시기를 바라는 몇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당신은 21세기의 첫 미국 대통령이지만 20세기가 남긴 유산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20세기 전반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막을 내리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반에는 반세기에 걸친 동서 냉전의 대결을 경험했습니다. 그 냉전사의 마지막 장이 쓰여질 곳이 바로 한반도이며 3만7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동의 과제라는 것을 한.미 양국은 거듭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가슴 속에는 56년째로 접어든 민족분단의 슬픈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건설해야 되겠다는 바람이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평화와 함께 통일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냉전시대가 독일통일로 막을 내렸듯이 아시아.태평양의 냉전사는 한국의 통일로 마감하리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한국인의 꿈을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이, 특히 세계사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새 대통령께서 깊이 이해해 주시기를 우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평화와 통일에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일 것입니다. 자유를 희생하는 통일은 어느 한국인도 원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유수호의 노력을 돕는 데 앞장서는 것이 미국의 전통이며, 오늘 대통령에 취임하시는 당신께서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지도자임을 우리 한국인은 매우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아시아의 평화에 직결돼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 가장 국토가 넓은 러시아, 세계에서 둘째 가는 경제대국인 일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은 아시아에서 패권국가의 출현을 예방하고 건설적인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국가이익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19세기와 20세기에서처럼 허약한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 열한째 규모의 경제,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국민적 의지를 지닌 나라입니다.

이러한 한국과 미국이 견고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유럽에서의 영국과 같이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영국인처럼 한국인은 자존심이 강한 국민입니다.

대통령께서 바로 이 점을 각별히 유의하시어 우리 양국의 특별한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가실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한국은 이른바 아시아 금융위기의 일환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경험해 왔습니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인 한국의 경제가 명실공히 선진화의 요건을 갖추기 위한 시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속적인 개방화를 통해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면서 세계적인 자유무역 신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시애틀에서의 불행한 사태는 자유무역 체제를 이끄는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적지 않은 의구심을 세계적으로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신의 대통령 취임이 자유무역 신장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정보산업혁명으로 더욱 활발해진 세계경제의 개방화와 자유화를 어떻게 질서있게 운영하느냐, 그와 동시에 날로 커져가는 국가간.지역간.계층간의 격차를 어떻게 적절히 처리하느냐는 역사적 도전 앞에서 당신이 확고하고 아량 있는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여덟째로 큰 교역국인 한국으로서는 한.미 통상관계의 원활한 발전이 한국경제 선진화의 관건이 되리라고 믿으면서 당신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게 되는 것입니다.

태평양국가의 하나인 미국은 한국인에게 참으로 가까운 나라가 됐습니다. 미국은 전세계로부터 꿈을 지니고 건너간 이민들이 건설한 위대한 다원사회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백만명이 훨씬 넘는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을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큰 축하와 기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21세기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유럽과 미주와 아시아가 평화와 번영으로 향한 창조적 균형을 이루는 세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바로 그러한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취임하시는 당신께서 그 꿈의 실현에 공헌하는 위대한 미국 대통령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홍구 고문>

당신이 21세기의

첫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시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세계의 여러 민족과

국가 가운데서

미국 대통령 취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과 한국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국가적 운명이

미국의, 특히

미국 대통령의

향방과 직결돼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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