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읽을 만한 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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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설 연휴,귀향을 서두르는 사람들에게 사나흘은 짧기만한 휴일이겠지만 별다른 약속이나 스케쥴이 없는 이들에게는 자칫 따분하고 지리하기만한 휴가 기간이 될 수 있다. 어떤가, 적어도 이틀 정도는 책 몇 권에 푹 빠져들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넉넉하게 쉴 수 있도록 해보지 않으실는지.

◇ 쉽고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 "클래식을 들으면 졸린다." 그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클래식은 듣는 이의 마음을 안온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란다.

책도 그렇지 않은가. 여기 쉽사리 찾아 보기 힘든 고전 산문들이 모여 있다.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학고재)는 까다로운 고전의 문을 아주 쉽사리 풀어낸다.

때로는 맑고 투명하게, 때로는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때로는 소소한 풍미를 전하는 중국 고전의 백미들이다.

마치 고요하고 잔잔한 산문을 읽는 듯한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바다출판사)도 있다.

풍부한 상상력에 작가만의 감수성으로 가볍게 읽히면서도 마음 한가운데로 넉넉히 흘러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글만으로 좀 심심하다면 『사다리 아래에서의 미소』(민음사) 안에서 조금은 색다른 모습을 만나보자. 헨리 밀러의 문장들을 따라 화가 미로의 색과 선들이 이어진다.

◇ '방콕족' 들을 위한 깊이있는 책〓쉽게 읽는 것도 좋고, 읽은 것을 마음으로 쌓는 것도 좋지만 읽은 것들을 머리 위로 끌어올려 좀 더 길고 진중하게 생각할 거리를 원하는 독자라면, 그러면서도 너무 어려워 질리지 않는 책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책들을 권한다.

새해가 될 때면 늘 중요하게 부각되는 주제는 '시간' .같은 시간이라도 그에 대한 체험은 각기 다른 인식의 차이를 각 문화권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개념 분석을 해낸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황금가지)는 새 시간을 맞이하는 좋은 읽을 거리임에 틀림없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이후)에서 새 날 새로운 도시의 꿈을 비춰보는 것도 좋겠다.

제3세계의 작은 도시였던 꾸리찌바에 '꿈의 도시' 라는 별명을 가져다 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과 더불어 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고 실행에 옮겨지게 한 계획의 원칙으로부터 새해에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새로운 발상들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 어린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아랫목에 아이와 나란히 발을 하고 "자, 그림이 이렇게 재밌지?" 라고 말해주는 것도 좋겠다.

『안나와 떠나는 미술관 여행』(주니어김영사)은 그림을 그리고 미술관에서 그림을 구경하는 일이 어렵고 따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려주는 책이다.

잘 놀던 아이들이 대뜸 "겨울이 되면 왜 이렇게 추워지지□ 따뜻한 해는 왜 밤이 되면 없어져□" 라고 물으면 어쩔텐가.

새삼 먼지 뽀얗게 쌓인 과학책을 펼쳐 읽을 수도 없고, 우리의 영악스런 아이들에겐 공부 더 하면 알게 된다며 윽박지른다고 먹힐 리 없다.

이럴 때 『바람이 멈출 때』(풀빛)는 칼데콧 상을 받았던 졸로토의 시적인 글과 비탈레의 그림을 통해 아이에게 사색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 준다.

물론, 곁에서 어깨를 맞대고 함께 책을 읽는 어른들까지도.

임지호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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