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파행 교육 부르는 사학법 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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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의 경제발전은 교육을 통해 잘 훈련된 인재들이 공급된 게 밑거름이 됐다. 바로 그 점에서 한국의 사학은 국가의 인력을 양성해온 기여도를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사립학교란 명칭 그대로 국가가 아닌 개인 또는 법인과 같은 사적 주체가 설립한 학교, 즉 공립교육기관과 대칭되는 개념이다. 오늘의 사학은 제도상으로 공립에 준하는 법의 규제와 정부 통제하에서 사학 본연의 독창성과 자율성을 상실하고 있다. 물론 일부 사학은 부조리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아왔다. 현재 180여개의 사학 중에서 비리가 있는 대학은 10여개에 불과하다. 이 대학들은 관선이사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교주는 학교를 빼앗긴 상태다.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는 대학은 정부가 계속해 엄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부조리한 대학들을 잡기 위해 잘하고 있는 사학들까지도 경영권을 빼앗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현 상태에서도 형법으로 처벌해 사학의 체제를 얼마든지 제도화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확정한 사학법안은 전체 사학을 비리투성이로 보고 새 틀을 짜서 학사운영회와 대학평의원회를 참여시켜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장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전문성과 지식도 없이 졸속하게 개혁하겠다는 것은 왜곡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치밀한 계획과 청사진이 있어야 하며 고도의 전략가와 국민의 지지가 따라야 성공할 수 있다. 만약 대학 개혁이 실패하면 국가경쟁력은 한없이 추락할 것이다.

여당의 사학개정안은 사립학교 재단이사회에 개방이사제를 도입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화하자는 것이다. 이사선임권은 설립자 또는 사학법인의 고유 권한이다. 이사회의 3분의 1을 개방이사를 통해 외부인에게 준다는 것은 사학의 경영권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현재 대학의 이사진은 사회적으로 명망있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로 구성됐다. 회의진행도 민주적으로 충분한 토의를 거쳐 매사를 신중하게 검토해 결정한다. 만약 개방이사 한명이라도 잘못 들어오면 회의 분위기는 살벌해지고 이사회가 마비돼 대학의 그 기능은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바꾸게 되면 이 위원회가 사학운영권의 많은 부분을 갖게 된다. 학사운영회의 대표 중에는 직원노조(기능직과 관리직)가 참여하게 되는데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경영권이 이념화된 교직원에게 넘어가면 학원가는 난장판이 될 것이다. 결국 대학행정은 마비되고 연구 분위기는 완전히 깨지고 만다. 대학행정은 대학을 잘 알고 전문지식과 행정력이 있는 CEO들이 맡아야 대학이 발전할 수 있다.

전국에 약 2000여개의 사립 중.고교가 있다. 현재도 교사들과 전교조 간의 갈등으로 이질감이 심화돼 교육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으며 어린 학생들의 이념화가 심각한 상태다. 여당의 사학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는 이념투쟁의 장으로 변질돼 교육의 질은 떨어질 것이고 학생들은 피해를 보고 국가의 장래는 어둡게 된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평등주의를 내세운 영국 대학들은 쇠락하고 철저한 경쟁과 실력 위주의 미국 대학들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섰다고 분석했다. 그 예로 옥스퍼드대가 하버드대에 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사립대학의 약진으로 국립대의 법인화와 자율화를 시작했다.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을 만들겠다며 베이징(北京)대와 칭화(淸華)대를 비롯한 100개의 대학을 선정해 교육 투자를 국가 최우선 전략으로 삼고 있다. 지금 온 세계가 교육 혁명을 통해 초일류 국가가 되려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여당은 고등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한국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민준기 경희대 석좌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