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끝까지 추적한 '자금 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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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0년 말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사회의 많은 식자들도 '우리가 이래서는 안된다' 는 분위기를 형성해 새해 들어서는 뭔가 국면이 바뀌고 국론이 통일돼 희망찬 출발을 하리란 기대를 했다.

그러나 경제 문제로 위축된 마음을 달래주고 희망을 제시해야 할 정치권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어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1996년 총선 때 안기부 자금이 당시 여당에 지원됐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하다.

중앙일보는 1월 9일자 3면에 관련 인사들의 명단을 특종 보도해 독자들의 알 권리를 우선시하는 용기 있는 결단을 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언론중재위에 사과문 및 정정보도 게재를 요청하는 중재신청을 냈으며, 중앙일보는 1월 12일자 2면에 '깨끗한 선거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리스트 내용을 소개해 국민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는 입장을 밝혔다. 독자를 중시하는 이같은 보도 자세는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일반 사건에서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과 이번 안기부 자금 총선 지원 사건의 경우는 본질이 다르다.

안기부의 자금 지원이 사실이라면 국가의 예산이 특정 정당의 선거에 사용된 중대한 사건으로서 결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돼서는 안되고, 과거의 관행 운운하며 적당히 넘어가서도 안되며,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중앙일보의 명단 보도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일반 국민에게 '법을 지키면 바보' 라는 인식을 갖게 해 사회의 근본이 흔들리는 원인이 됐다.

이번에야말로 언론들이 이 문제를 끝까지 추적해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정치풍토를 선진화하며,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닉슨 대통령의 집요한 은폐 기도에 묻힐 뻔했으나 언론의 끈질긴 추적으로 사실이 밝혀져 닉슨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1월 1일부터 시작된 '기초를 다지자' 시리즈는 우리 사회를 좀먹는 적당주의, 온정주의, 자신만을 아는 이기주의를 타파하지 않고는 결코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가전제품의 코드가 빠졌는데 고장신고를 하는 공짜 의식(1월 8일자), 폭설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하자 항공사 직원한테 책임 지라며 욕하는 자기 중심의 독단(1월 10일자) 등은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독일 국민에게 고함' 이란 글로 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들 기사에도 이 사회의 무너져 내린 원칙을 바로세우고 법치를 뿌리내리도록 하며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스탠더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정말로 우리 국민들이 되새겨야 할 값진 내용들이 담겨 있다.

1월 3일에 시작된 '선진금융, 이 정도는 돼야' 시리즈도 금융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21세기에 우리 금융산업은 단순히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보조적인 산업이 아니라 국부를 주도적으로 창출하는 전략산업이 될 수 있는 바, 이 기획은 우리 금융산업의 그같은 선진화에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다.

최운열 <서강대학교 교수 겸 한국증권연구원 원장>

◇ 1월 15일자 7면 옴부즈맨 칼럼 중 '이는 일반 국민에게 법을 지키면 바보라는 인식을 갖게 해…' 부분 바로 앞에 있던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일어난 불법 사건이 정치적 이유 때문에 흐지부지되어 버린 경우가 너무 많았다.' 는 문장이 제작과정의 실수로 빠졌습니다.

필자에게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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