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알렉산더 헤이그 전 미국 국무장관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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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증인 중 한 명이던 알렉산더 헤이그(사진)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5세. 감염 합병증이 사인이었다고 AP는 전했다.

헤이그는 군인이자 관료·정치인이었다. 4성 장군으로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 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총사령관을 지냈다.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등 세 명의 대통령 밑에서 고위 관료로 일했다. 198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 고배를 들었다. 헤이그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 때마다 현장에 있었다. 그는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일본 점령군이던 미 8군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 겸 일본 점령군 사령관의 수행 장교로 일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 에드워드 아몬드 장군이 지휘하는 10군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작전 등에 참가했다.

1981년 2월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오른쪽에서 셋째)을 공항에서 영접하고 있는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왼쪽에서 셋째). [중앙포토]

레이건 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이 됐을 땐 당시 갓 출범한 한국의 제5공화국 군사정권을 정권을 상대로 민감한 외교 문제들을 조율했다. 81년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자신에 대한 미국의 지지의사를 포함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헤이그는 “미국이 전 대통령을 초청한 게 중요하다. 한국 국내 문제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미 국립안보문서보관소(NSA)가 이달 8일 공개했던 미 국무부 문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다.

미국인들은 헤이그를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기억한다. 그는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으로서 사태 수습을 책임졌다. 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도록 설득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때문에 이 사건을 처음 워싱턴포스트에 제보한 ‘딥 스로트(deep throat: 당시 내부 고발자의 암호명)’란 추측에 한때 시달렸다.

81년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저격당한 직후 기자들 앞에서 “지금은 내가 백악관을 통제하고 있다”고 발언해 구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미국에서 대통령 유고시, 국무장관은 부통령(상원의장 자동겸임)·하원의장에 이어 권력승계 서열 3위이기 때문이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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