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리스트' 로 본 자금 배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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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정(司正)당국이 작성한 '안기부 자금 지원자 리스트' (본지 1월 9일자 3면)는 1996년 정국 상황의 또다른 압축판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영삼 정권'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지도부가 어떤 전략과 속셈으로 4.11 총선(15대)에 임했는지 드러난다. '리스트' 를 바탕으로 당시 총선자금의 배분 실태를 추적해 본다.

◇ 불출마자도 지원〓권해옥(權海玉).김봉조(金奉祚).정인봉(鄭寅鳳)씨 등 출마하지 않은 후보들에게도 자금이 지원된 것으로 리스트에 나와 있다.

여기에는 權.金전의원의 경우 "자금수수 당시 지구당위원장 15대 불출마" 로 적혀 있다.

이들 3명은 자금을 받았을 때는 지구당위원장이었으나 이후 공천에 탈락해 출마하지 않았다.

▶權전의원은 지역구(합천)가 거창과 합쳐졌고▶金전의원은 김기춘(金淇春)의원에게 밀려났다.

당시 鄭의원은 신한국당에 막 입당, 이명박(李明博)후보를 도와주며 무소속 출마를 포기했다.

◇ 격전지와 저격수〓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의 아성인 부여에 신한국당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이진삼(李鎭三)후보를 'JP저격수' 로 공천했다. 리스트에는 李후보에게 2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돼있다.

11명이 출마한 울진의 김광원(金光元)후보에게는 2억3천만원을 보낸 것으로 돼있다. 김중권 민주당대표는 당시 '무당파국민연합' 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경기 부천 원미갑구에 투입된 허태열(許泰烈)전 부천시장도 국민회의(민주당 전신) 중진인 안동선(安東善)의원에 대한 견제구였다.

許후보에게는 4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전반적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격전지와 '전략지역' 에 거액이 투입된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민태구(閔泰求.충북 진천-음성.4억5천만원).박희부(朴熙富.충남 연기.4억3천만원)후보는 거액을 지원받은 것으로 돼있지만 'JP바람' 때문에 효험을 보지 못했다.

◇ '이중 플레이 논란' 〓대구 서갑의 여당후보는 강용진(姜湧珍)씨. 그러나 姜씨에게는 자금이 한푼도 배정되지 않은 것으로 돼있고, 무소속 백승홍(白承弘.현 한나라당 의원)후보가 2억8천만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남 진주갑구의 경우 신한국당 후보(鄭必根)와 무소속 후보(金在千)에게 똑같이 2억원씩을 배정한 것으로 돼있다. 김재천 후보는 YS계 출신이다.

경기 김포의 신한국당 김두섭(金斗燮)후보와 무소속 박종우(朴宗雨)후보에게도 2억원씩을 지원하는 '이중 플레이' 를 한 것으로 돼있다. 실제로 신한국당은 총선 후 무소속 후보들을 영입, 원내 과반수를 만듦으로써 효과를 얻었다.

◇ 누락 의혹〓한나라당측은 "리스트의 신빙성도 의심스럽고, 의도가 있다" 며 그 근거로 "당시 당 지도부였던 김윤환(金潤煥)민국당 대표.이한동(李漢東)총리.김종호(金宗鎬)총재권한대행이 빠져 있다" 는 점을 들었다.

노재현.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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