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급락… 국내 기업들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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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 엔화가치가 급락하면서 국제 시장에서 일본 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있지만 엔화의 하락속도가 빠른 데다 앞으로 상당기간 엔저(低)가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 달러당 1백20엔 전망〓5일 도쿄(東京)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개장초 달러당 1백16엔대로 떨어진 뒤 전날보다 2.14엔 하락한 1백16.29엔으로 마감했다.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16엔대로 떨어진 것은 1999년 7월 29일 이후 약 1년5개월 만이다.

이날 엔화 하락은 지난 4일 금리인하 조치로 미국경기가 연착륙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기관투자가들이 엔화를 처분하고 달러화 매입에 나선 때문이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대장상이 "엔화가 어느 수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놓아 두는 것이 좋겠다" 며 시장에 개입할 의향이 없음을 밝힌 것도 엔화 하락세를 자극했다.

이와 함께 산업생산.실업률 등 최근의 경기동향 관련 지표가 잇따라 부정적으로 나오고 있어 당분간은 엔화 약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사가 금융기관 딜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엔화가치는 상반기 중 달러당 1백20엔 정도까지 하락했다가 하반기 들어 경기회복에 따라 다시 1백엔대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됐다.

◇ 철강.유화 업종 비상〓지난 연말만 해도 올해 엔화 강세를 점쳤던 국내 수출업계에서는 예상과 달리 엔화가 급락하자 서둘러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합이 심한 철강.석유화학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출업계에서는 엔에 대한 원화가격이 1백엔당 1천1백원선(5일 현재 1백엔당 1천1백. 97원)이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철강이나 석유화학 업계는 엔저 현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철강협회 전홍조 통상팀장은 "98년 당시 엔저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엔화가치가 1% 떨어질 때마다 국내 기업들의 철강제품 수출이 0.34%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서 "엔저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수지타산을 맞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그동안 엔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으로 꼽혔던 반도체는 최근 일본이 비메모리 반도체에 주력하면서 경합품목이 적어져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부품을 들여다 조립하는 업체들은 엔저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원화는 조만간 절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비해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원화가치는 오르는데 엔화는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되면 한국에 외국인 투자가 계속 들어오기 어렵다" 며 "원화도 엔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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