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이회창총재 영수회담 대화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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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4일 청와대 영수회담은 소한(小寒)추위 만큼이나 냉랭하게 시작됐다.

“추운 날씨입니다.”(金대통령)

“경제도 춥고,국민도 춥고,그래서 추운 목소리를 전달하러 왔습니다.”(李총재)

“더운 바람으로 추위를 물리쳐야 합니다.추위는 언젠가 물러갑니다.”(金대통령)

“따뜻한 바람을 불어 국민들이 추위를 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李총재)

◇의원 이적(移籍)파문

▶李총재=자민련으로 간 의원 세명은 다시 돌려보내는게 좋겠다.그중엔 대통령 가신(家臣)도 있다.그런데 어떻게 몰랐다고 하나.민주당 대표도 몰랐다는데 소도 웃을 일이다.백지화하고 원상복귀 시켜라.여소야대는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다.

▶金대통령=총선 민의(民意)는 여야 모두에게 과반수를 주지 않았다.자민련에게 캐스팅 보트를 줬다.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드는 것이 민의에 맞다.

▶李총재=총선민의는 민주당이 아닌 야당에 제1당을 준 것이다.자민련엔 17석밖에 주지 않았다.국민이 DJP공조를 불신임한 것이다.따라서 DJP 공조 복원은 민의를 거스르는 것이다.원상회복 없인 꼬인 정국을 풀수 없다.

▶金대통령=자민련과의 공조는 대선 공약이다.공조복원은 당연하다.의원 세명을 자민련에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다른 길이 없었다.자민련 문제를 국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처리하려 했는데 한나라당이 물리력으로 막지 않았나.다른 방법이 있느냐.한나라당이 힘으로 막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온 것이다.내일이라도 국회법을 표결로 통과시키면 돌려 올 수 있다.국회법을 국회에서 표결로 처리한다고 약속하면 이적한 의원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다.그렇게 하겠느냐.

▶李총재=DJP공조를 먼저 깨고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드는 것을 논의할 용의가 없나.

▶金대통령=그렇게는 할수 없다.

◇정계개편과 개헌론

▶李총재=지금의 의원 꿔주기는 인위적 정계개편과 관련된 커다란 정치음모다.의원꿔주기는 지금껏 하지 않기로 한 인위적 정계개편의 시작이다.배반감을 느낀 국민들은 이 정권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金대통령=정계개편은 생각치 않는다.지난해 4월24일 영수회담에서 국정안정을 위해 여야가 협력하는 것을 바탕으로 정계개편을 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그런데 그동안 그런 협력이 야당에서 없었다.내가 바라는 것은 야당과 손을 잡고 타협해서 정국을 운영하는 것이다.국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예산도 다섯번이나 연기돼 사상 처음으로 법정기일을 넘겼다.그런 식이면 국회 운영을 한나라당에 기대하기 어렵다.자민련과 공조복원을 할 수밖에 없다.

▶李총재=예산은 당시 여당의 정책위의장이 사퇴하고,지도부가 교체돼 협상이 되지 않았다.총선민의속에서 야당과 협력하는게 민주정치 아닌가.개헌론도 자꾸 나오고 있다.인위적 정계개편 시도다.개헌등 인위적 정계개편의 시도를 포기한다고 국민앞에 선언하라.

▶金대통령=나는 개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관계도 없다.할 생각도 없다.1987년도 당시 야당은 정·부(正·副)통령제를 주장한 적이 있다.그것이 지역협력에 도움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개헌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경제위기 극복과 개각

▶李총재=경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대통령이 제대로 모르고 있다.1·4분기에도 4% 경제성장이 된다고 하는데,안된다.마이너스 성장이 될 지도 모른다.소비·투자·수출이 급강하하고 있다.구조조정도 실패했다.금융구조조정을 작년말까지 한다고 해놓고 전혀 안됐다. 몇가지 제안하겠다.

첫째 구조조정을 정공법으로 해라.막연히 언제까지 하겠다는식은 안된다.

둘째 올바른 구조조정이 전제된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면 금년말이나 내년초에 경제위기가 올것이다.특히 공적자금 40조원이 마지막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

세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정책 책임을 지는 국정운영을 해라.관료들에게 책임을 미뤄서는 국민의 냉소를 받는다.

▶金대통령=금융개혁은 지난해말까지 기본틀을 마련했다.이대로 가면 오는 2월까지 상당부분 마무리될 것이다.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지금도 수시로 지시하고,살피고 있다.

▶李총재=살릴기업은 살리고,죽일 기업은 죽여야 한다.

▶金대통령=나도 그렇게 생각하고,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李총재=전면 개각을 바로 단행해야 한다.총리를 바꿔야 한다.자민련과 장관을 나눠 갖는 식의 개각으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국정쇄신도 불가능하다.전문가와 프로들을 영입해 새로 출발해야 한다.

▶金대통령=李총재 말씀을 참고로 하겠다.

▶李총재=경제개혁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金대통령=李총재가 걱정 안해도 내가 그렇게 할 것이다.

◇96년 총선때 안기부자금 수사

▶李총재=어떻게 이 정권은 임기내내 전(前)정권을 파헤치기만 하나.

▶金대통령=안기부는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중요한 기관이다.그런 기관의 돈이 선거자금에 사용됐다면 그것은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일이다.이런 문제로 시비를 하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진실을 밝혀야 한다.

▶李총재=과거에 수사를 해 놓고 왜 다시 검찰이 수사를 하나.

▶金대통령=그때는 조사가 진행중이라는 얘기만 들었다.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었다.그러나 최근에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에서 분명히 (돈을)가져다 썼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보고 받았다.내가 검찰 수사를 중단하라고 한다고 그렇게 되겠나.과거 정권에서는 그런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 안된다.

▶李총재=국민들은 이번 수사를 정상적인 사법권의 행사로 보지 않고 야당탄압용으로 본다.

▶金대통령=국가의 돈을 선거에 썼다면 그냥 둘 수는 없지 않나.

이수호·서승욱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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