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우려에 국내 금리인하 저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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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은행은 4일로 예정했던 금융통화운영위원회 회의를 지난해말 일주일 연기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경기 급강하를 막기 위해 3일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나서자 우리 정부에서도 금리인하 불가피론이 제기됐다.

따라서 11일 금통위 회의에선 국내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콜금리 인하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이다.

정부는 최근 심화된 소비위축과 경기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소폭의 금리인하를 바라는 입장이다.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데도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계기업이 금융비용 부담을 덜어 연명하는 등 금융.기업 구조조정에는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이보다 주가상승 등을 통해 구조조정에 따른 공적자금 등 국민 부담을 덜 수 있는 등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이다.

또 워낙 소비가 위축돼 있어 금리인하가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작다는 점도 생각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올 경제운용 방향에 '통화를 신축적으로 운용하겠다' 고 밝힌 점도 금리인하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금리결정권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운영위는 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미국과는 달리 지난해 금리인상 폭이 0.5%포인트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인하의 필요성과 효과가 미지수라는 것이다.

금융통화위원들은 금리 인하가 물가를 자극할 경우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아직 신중론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인하 찬성론=외국 금융기관들은 미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이 금리를 동반 인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샐러먼스미스바니 관계자는 "미국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에서도 금리가 이른 시일 안에 인하돼야 한다는 시장 신호가 형성될 것" 이라고 말했다.

오석태 시티은행 부장은 "한국도 지난해 3분기부터 경기가 급속하게 둔화하는 조짐을 보인 만큼 이미 금리인하를 고려했어야 옳았다" 며 "이왕 금리를 내리려면 시장이 기대할 때 확실히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 정부 이미 경기부양으로 선회〓재정경제부는 지난해 10월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올릴 때 하반기 들어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인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한은이 지난해 단기 금리를 한차례 올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면서 "금리를 내리려면 상반기에 재정지출을 집중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해야 효과적" 이라고 강조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12월 '선(先)구조조정-후(後)경기부양' 을 전제로 경기를 진작하려면 재정을 확대하기보다 금리를 인하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 한국은행은 아직 신중한 입장〓한국은행은 미국의 금리인하가 단기적으로 국내에 외자 유입을 늘려 주가를 올리고 환율을 안정시키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내 금리인하에 대해선 신중한 견해를 보였다. 금통위 관계자는 "현 콜금리 5.25%와 재할인율 3%는 충분히 낮은 수준" 이라고 말했다.

또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책을 성급히 쓸 경우 진행 중인 구조조정 정책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금리가 낮고 통화도 충분히 풀려 있는데 돈이 안도는 것은 은행이 대출을 꺼리고 기업의 신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금리인하보다 신용경색 해소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금리수준이 성장률보다 높고 물가불안의 우려가 적은 데 비해 우리는 올해 물가가 오를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리인하가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이근모 굿모닝증권 전무는 "우리는 지난번 경기상승 때 금리를 거의 올리지 못했지만 미국은 그동안 줄기차게 올렸던 금리를 내리는 것" 이라며 "현재는 시중에 돈이 부족한 게 아니기 때문에 금리를 내려도 큰 효과가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송상훈.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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