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경의 영화속 집이야기] '트루먼쇼','플레젼트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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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유형으로 자리잡고, 내집 마련이 곧 아파트 한채 마련하는 것으로 통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이상적인 집의 모양을 그려보는 것이 쓸데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상적인 주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을 수는 없지만 미국 사회에는 이상적 집이라면 대체로 공감하는 일정한 틀이 있다.

가상현실을 그린 영화 '트루먼 쇼' (사진 위)와 '플레젼트빌' 은 이러한 공통분모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두 영화에서 미국 중산층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집은 그리 크지 않은 흰 목조 이층집으로, 나즈막한 하얀 나무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비슷한 이웃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다.

가로수가 우거진 길에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한가롭게 뛰논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퇴근하는 주인공은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서 "여보 나 왔어" 하면서 모자를 벗어 걸고, 부인은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서 나오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아래층에는 현관.거실.부엌.식당이 있고, 이층에는 침실이 있다.

아침은 부엌 가운데 놓인 식탁에서 먹고, 저녁은 따로 마련된 식당에서 먹는다.

부부의 침실에는 트윈베드 두개가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다.

'플레젼트빌' 에는 가구점 쇼윈도에 놓인 퀸사이즈 침대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대는 장면이 나온다.

1950년대 미국 TV드라마에는 흔히 부부침실에도 1인용 침대 두개를 놓고 따로 사용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청교도적인 전통이 강한 미국사회에서 그런 것을 교육적이고, 이상적인 부부의 침실이라고 생각한 셈이다.

잔디밭도 빼놓을 수 없는 주거공간. 길쪽에 면한 현관 반대편에 뒷마당 형태로 자리잡은 잔디밭은 주말이면 남편이 잔디를 깎거나 이웃들과 바비큐파티를 즐기고, 아이들과 강아지와 함께 뒹굴기도 하는 휴식의 장소다.

2000년대 미국은 이혼율의 증가로 편부모.독신가정이 늘어나면서 이런 풍경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생활에는 파란 잔디밭 가운데 하얀 집과 자상한 부모, 나즈막한 울타리 너머의 다정한 이웃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 자리잡은 이상적인 집과 동네가 고층아파트.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이 전부라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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