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 대표 이기웅씨 산문·사진집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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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출판장이는 글을 쓸 줄 모른다.아니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글 쓰는 이들의 삶으로부터 꿈을 빌어 온다."

출판사 열화당의 이기웅(60) 대표가 사진집 '세상의 어린이들'(열화당)과 함께 펴낸 산문집 '출판도시를 향한 책의 여정'(눈빛)에서 들려주는 글은 역설적이다. '꿈을 빌어 오는' 대신 이번에는 자신이 꿈을 펼쳐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책 두권은 그의 갑년(甲年)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징표다.보통 단행본들 보다 작은 판형을 선택한데서 이기웅의 예절(그가 즐겨쓰는 어휘가 '예절'이다)을 읽어낼 수 있다.

이중 산문집의 경우 자신의 대학출강 시절 제자인 이규상(눈빛 대표)이 나서서 원고를 모으고 봉정(奉呈)하는 과정을 거치는, 보기 좋은 모양새를 취했다.

장인적 책 제작으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한 이기웅의 책 두권은 미담,그 이상이다.그는 꿈이란 '모반의 꿈'이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지식문화의 연출자'인 출판장이로서의 일관된 꿈을 고집스레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다.그는 책에서 출판행위에 대한 모더니즘적 신념을 거듭 보여준다.

"출판은 학교나 법원이나 종교단체와 함께 '진리의 기구'라 일컬어질 정신영역의 존재입니다.무슨 도덕 강의같은 소리나 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책을 만듭니까? 출판은 한 시대의 소명입니다. 사람의 정신을 다루고 정신에 자양을 공급하는 젖줄과 같은 것이지요."(6-7쪽)

부박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그이 몽상가적 신념은 파주출판단지에 대한 오랜 구상과 현재진행형의 실천으로 표현되고 있다.산문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어떻게 하면 이 시대를 위한 출판의 인프라를 구축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인문정신에 충실하기 때문에 읽을거리로도 추천할 만하다. 오랜 지기(知己)인 사진작가 강운구가 편집을 거들어준 사진집은 세계의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듯하다. 역시 그의 지기인 소설가 조세희가 서문을 썼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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