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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물려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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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옷의 용도는 몸을 가리고 보호하거나 멋을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신적 교감의 매개(媒介)이기도 하다. 동서고금(東西古今)에서 그런 예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부보상(負褓商)이란 이름을 하사했던 등짐·봇짐장수들은 강인한 단결력을 과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자(父子)와 형제 이상의 의리를 나눌 정도로 ‘동무 의식’이 강했다. 그 바탕엔 ‘옷 바꿔 입기’ 습성이 있다. 부보상은 길을 오가다 만나면 입었던 옷을 서로 바꿔 입었다. 옷 바꿔 입기가 의리를 표시하는 방법이요, 일심동체(一心同體) 의식을 다지는 관습이었던 셈이다.

절에서의 승복 물림도 정신 영역의 행위에 가깝다. 절에 새로 들어온 행자는 세속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지내다 정식으로 머리를 깎고 나면 헌 옷을 받게 된다. 새 옷을 받게 된 승려들이 물려준 것이다. 나이 든 승려가 죽게 되면 그가 입던 옷들은 대개 그의 제자들이 물려받아 입는다. 그들 사이에 물려주고 물려받는 게 ‘겉껍데기 옷’만은 아닐 터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년)도 궁녀나 귀족 여인들에게 자신이 사용했던 의복들을 물려줬다. 은혜를 베푸는 징표였던 셈이니 그 옷은 ‘행운의 선물’로 여겨졌다. 영국의 옷 물림은 하찮은 내의마저도 형제자매끼리 물려 입을 정도라고 한다. 중고품 유통이 성한 나라이고, 내의의 내구성(耐久性)이 뛰어나다고 해서 생기는 현상만은 아닐 게다. 거기엔 우애와 일체감을 나누는 의미가 깃들어 있을 게 분명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원주민인 베타위(Betawi)족은 웨딩드레스를 대를 물려가며 신부에게 입힌다. 이 또한 가난의 탓보다는 사랑과 결속의 의미가 큰 풍습이 아닐까.

새 학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교육청이 지원한 교복 물려주기 알뜰장터가 성황이라고 한다. 헌 교복을 모아 깨끗이 빨고 수선해 한 벌에 500~5000원에 판다고 하니 거저나 마찬가지다. 교복 구입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다. 교복 물림은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복을 물려주고 물려 입으면서 선후배 간에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이 돈독해지는 소득 또한 크다. 교복 물려주기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뿌리다 못해 폭력 수준에까지 이른 졸업식 뒤풀이 일탈이 좀 수그러들지도 모를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