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정치 맥짚기] 노무현장관 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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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노무현(盧武鉉)해양수산부 장관이 23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를 '기회주의자' 라고 비난했던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盧장관은 "기자들과 사담(私談)을 나눈 것이 당에 내분이 있는 것처럼 비춰져 당과 대통령에게 대단히 죄송스럽다" 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표를 지명한 이상 대표를 중심으로 당의 단합이 이뤄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까닭은 뭘까. 그의 주변에선 "파문이 확산하면 金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차기 대선에 뜻을 둔 盧장관의 정치적 입지도 약화할 것이라고 판단한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는 盧장관에게 극도의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장관 일이나 잘 하라" 고 꼬집은 데 이어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은 22일 盧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金대통령의 심기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에서 盧장관 성토발언이 나온 것도 청와대 분위기를 반영한 때문이라고 한다.

박상규 사무총장은 "공무원 신분으로 집권당 대표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이라며 "임명권자인 金대통령에 대한 도전행위" 라고 비난했다.

동교동계 핵심인 김옥두 전 사무총장도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해당(害黨)행위" 라고 규탄했다.

청와대와 당 핵심 관계자들의 盧장관 비난은 안동선(安東善)의원 등 '김중권 대표 체제' 에 불만을 가진 인사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 盧장관 경질설이 나오는 것도 청와대의 단호한 기류를 반영하는 것" 이라고 한 당직자는 설명했다.

金대표로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상황을 맞은 셈이다.

盧장관 발언은 그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 자신에 대한 비판은 곧 金대통령에 대한 도전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金대표는 24일 "사람은 실수가 있는 법이다. 盧장관 발언은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고 여유를 보였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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