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능 불상사" 수험생 허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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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하버드대 가기보다 서울대 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

올해 특차모집에서 수학능력시험 만점자가 탈락했다는 소식을 접한 수험생들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식이 된 이번 대학입시의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올해 서울대에서 수능 만점을 받고도 탈락한 수험생은 고교 내신성적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반해 내신성적 산정이 좋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미국 하버드대에 막바로 도전해 합격한 과학고 2학년생이 있었다.

내신에서 불리한 두 학생이 한쪽에서는 수능 만점을 받고도 탈락하고, 한쪽에서는 외국 유수 대학에 합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연세대 김하수 입학관리처장은 "이번 일은 점수로만 학생을 뽑는 현행 입시제도의 한계를 드러낸 것" 이라고 평가했다.

쉬운 수능에다 고교간 격차가 큰 학생부 성적을 합산해 우수학생을 줄 세우는 특차제도의 모순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 만점자 탈락 분석〓서울대 인문계 최상위권 학과에서 탈락한 수능 만점渼?서울대의 내신성적 산정에서 2등급을 받아 총점에서 1.5점 깎였다.

또 4백점 만점에 포함되지 않은 제2외국어에서 한 문제를 틀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의 내신성적 반영비율은 19.2%다. 76.9%는 수능, 3.9%는 제2외국어 성적이다.

수능에서 만점을 받고도 탈락한 학생은 내신성적과 제2외국어에서 각각 감점을 당해 고배를 들었다.

특히 서울대는 고교에서 배우는 5개 과목에서 모두 잘해야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과목평균석차백분율로 내신성적을 따지기 때문에 한두 과목에서 성적이 처지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수능 만점, 내신성적 만점 등 모든 것을 잘해야 현행 입시체제에서는 안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생의 학력.적성.특기 등을 다양하게 따져보는 하버드대보다 서울대 가기가 힘든 이유다.

◇ 불합리한 입시체제.대안〓고려대 김성인 입학관리실장은 "고교별 품질 격차가 큰 내신에 의해 수능 만점자가 탈락하는 현상은 이해하기 힘든 일" 이라며 "고려대에서도 지난해 탈락자가 한명도 없는 3백90점대에서 올해는 7백명 이상이 탈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고 말했다.

최근 고려대의 조사 결과 전교생 모두가 수능 10% 안에 든 고교끼리 내신성적을 비교할 때 '수' 를 부여한 비율이 두배 가량 차이가 날 정도로 내신성적은 극심한 고교간 편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수능성적.학생부성적.논술성적 등 모든 전형 점수를 합산하는 '총점제 방식' 의 현행 수능체제는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수능시험을 어렵게 출제하는 것이 대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일단 수능성적으로 거르고, 학생의 고교시절 성적으로 또 거르고, 특기로 거르는 다단계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총점 합산방식은 학생들에게 무한경쟁을 유도한다" 며 "대학이 우수학생을 거를 수 있는 다양한 전형제도를 개발해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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