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밴쿠버] ‘깜짝 은메달’ 이승훈, 뒷심은 쇼트트랙서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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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이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후 메달을 직접 깨물어 보고 있다. [밴쿠버=연합뉴스]

고정관념을 깼다. 그리고 통쾌하게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승훈(22·한국체대)이 아시아 선수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에서 메달을 따냈다. 그는 14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밴쿠버 올림픽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0m에서 6분16초95로 2위에 올랐다.

이승훈은 1년 전만 해도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을 통과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그저 그런 쇼트트랙 선수였다. 그는 지난해 4월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신 뒤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는 “쇼트트랙에서 안 됐는데 종목 바꾸면 될 것 같으냐”는 비아냥을 들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스피드로 전향한 이승훈은 또 한 번 고정관념을 깼다.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던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에서 당당히 세계 2위에 오른 것이다.

◆체력 훈련이 막판 스퍼트 비결=이승훈을 제치고 금메달을 딴 스벤 크리머(23·네덜란드)는 “이승훈의 스퍼트가 나를 미치게 했다. 만일 그보다 뒷조에서 경기했다면 부담감 때문에 금메달을 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승훈이 은메달을 따낸 비결은 바로 막판 스퍼트에 있었다. 그는 후반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냈고, 마지막 3바퀴 400m 구간 랩타임이 초반과 큰 차이 없는 29~30초대였다. 이승훈은 “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게 들어맞았다”고 자평했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m에서 은메달을 땄던 김윤만은 “스피드 팀이 하체 힘을 기르기 위해 사이클 훈련에 주력했다. 승훈이도 마찬가지”라면서 “한국 선수들의 체력과 지구력이 눈에 띄게 올라온 건 이런 훈련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또 이승훈은 타고난 심폐지구력과 근지구력이 남달라 종목을 바꾸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2009~2010 월드컵시리즈에서 5000m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웠고, 지난해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세계스프린터선수권대회에서는 1만m와 50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웠다.

◆곡선주로에서 따라잡는다=이승훈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의 장점을 고루 활용했다. 김윤만은 “보통 스피드 선수들은 직선에서 피치를 올린 뒤 곡선에서 스피드가 죽는데, 코너에 강한 승훈이는 코너에서 리듬감을 살려 피치를 올린 뒤 긴 직선 주로에서 쉬는 주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체력 소모를 최소화한다”고 설명했다.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은 “쇼트트랙 선수들은 지구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승훈의 장점도 바로 지구력”이라고 설명했다. 스피드 선수들은 경기 후반부로 가면 하체 부담이 커져 자세가 높아지지만 쇼트트랙 선수 출신인 이승훈은 이를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이승훈은 “쇼트트랙이 하체에 부담이 더 크다. 현지 적응 훈련을 하기 직전까지도 쇼트트랙 훈련을 병행했다”며 “쇼트트랙 기술을 활용해 스피드 선수들이 하지 못한 곡선 주로법도 나름대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밴쿠버=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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