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집권 초기부터 강경책 펼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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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집권 초기부터 강경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며 그 경우 1992년 빌 클린턴 행정부처럼 커다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LA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부시는 ▶공화당 강경파들의 도움을 얻어 선거공약을 밀어붙이거나▶야당인 민주당과 타협하는 두 가지 방안이 있는데 현재 밀어붙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당선자가 민주당과 마찰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은 크게 세 가지다.

10년간에 걸친 1조3천억달러의 감세정책과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구축 추진, 또 바우처 시스템으로 불리는 학부모의 자녀 학교 선택제도 강화 등이다.

이에 대해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는 "우리가 선거에서 간신히 이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신념을 굽힐 수는 없다" 며 강경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또 "모든 정책은 우리쪽 기본입장에서 출발한다" 고 말하며 선거공약을 강행할 뜻임을 밝혔다.

LA타임스는 부시의 현 상황이 92년 집권 당시 클린턴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클린턴은 "집권 초기에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면서 집권과 동시에 의료보험 개혁 등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다 공화당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고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잃어 94년 상.하 양원의 주도권을 공화당에 빼앗겼다.

하지만 현재 부시가 직면한 상황은 92년의 클린턴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게 미 언론의 분석이다.

부시 당선자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보다 전체 유권자 득표율이 낮았다. 또 사상 유례 없는 개표 공정성 시비에까지 휘말려 정치적 입지가 크게 손상된 상태다.

연방 상원은 민주.공화 양당이 정확히 50석씩 반분하고 있고 하원에서도 민주당보다 불과 9석이 더 많을 뿐이다.

따라서 부시가 클린턴 집권 초기처럼 밀어붙이기를 강행한다면 미국 정치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LA타임스는 부시 당선자가 민주당의 협조를 받는 융화정책을 펼쳐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상황인데도 말로는 "나는 통합주의자다" 라고 외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내정자인 테리 매콜리프는 "부시와의 허니문(대통령 취임 직후 야당이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없다.

공화당에게서 우리가 받은 대접을 고스란히 돌려주겠다" 며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부시의 앞길은 산 넘어 산인 셈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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