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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그는 바다를 품고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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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는 뜻이다. " 밀란 쿤데라의 '향수' 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향수는 감미로운 그리움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그리움인 셈이다.

왜 너의 부재가 고통스러운가. 너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으므로. 그런 사랑은 놀음이 아니라 실존이며, 감정의 사치가 아니라 치열한 삶이다.

내가 나무라면 너는 물. 내가 물이라면 너는 물길. 내가 물길이라면 너는 바다. 네가 바다라면 나는 갯벌. 내가 갯벌이라면 너는 하얀 조가비.

너, 알지? 갯벌이 죽으면 바다 생물이 죽고, 갯벌이 죽으면 바다가 죽는다는 걸. 바다는 뻘에 대한 향수를 가진다.

그러므로 바다는 뻘의 부재가 고통스럽다. 너, 알지? 바다 생물의 90%가 평생의 한번은 갯벌에 왔다 가야 살 수 있다는 걸.

전어는, 웅어는, 조기는, 서해안에 출현하는 어류의 77%는 새만금 갯벌에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어류뿐일까. 새만금 뻘이 없어지면 철새들은 어디로 가나. 검은머리 갈매기는 어디로 가나. 저어새는 어디로 가나. 황새는 어디로 가나. 그리고 전국 50%의 조개를 제공하는 조개잡이 아낙네는 어디로 가나.

습한 뻘은 불필요한 진흙의 땅이 아니라 바다의 품에서 사는 생명들의 자궁이다. 뻘의 마음 속엔 바다가 있다.

그래서 뻘은 기꺼이 바다의 아이들을 품는다. 뻘이 바다의 아이들을 품지 않으면 바다도 죽는다. 그게 적조현상이다.

그 뻘이, 서해안 최대의 뻘이 죽으려 하고 있다. 여의도 면적의 1백4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갯벌이 죽으려 하고 있다.

아니, 타살되려고 하고 있다. 뻘을 죽여 뭐하나? 2만8천3백㏊의 농지와 새만금호가 조성된단다.

그렇게 농지가 모자랐을까. 우리나라 농경지는 매년 3만㏊가 넘게 다른 용도의 토지로 변경된단다.

이 무슨 이율배반인가. 그보다 많은 농경지는 용도변경해주고 엄청난 돈을 들여 뻘을 죽이다니.

지금까지 새만금 뻘을 죽이는데 얼마의 돈이 들었을까.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의 대선공약으로 91년 기공식을 가진 이 사업에 들어간 사업비는 공사 허가시 8천2백억원.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사는 매년 돈만 잡아먹어 99년까지 1조2백51억원이 들었단다.

앞으로 완공하려면 7조원이 들고 전북도가 바라는대로 복합산업용지로 개발할 때는 대략 28조원이 든단다.

휴 - . 막대한 돈을 들여서 자연을 망치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인가. 자기 욕심에 자기를 망치는 놀부인가.

마침내 순백의 수녀님들도 팻말을 들었다. '새만금을 살려주세요. ' 그래, 보존하는 게 아니라 살려주는 것이다.

새만금은 물질이 아니라 생명이므로. 바다의 자궁이고 서해안의 어머니이므로. 뭔가 '울컥' 한다.

왜 이렇게 아픈 사업을 계속 하는가. 어쩌면 건설업자의 배만 불리는 일은 아닐까. 이런 일을 찬성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의원들은 혹시 그들과 유착된 의원들은 아닐까.

다행히도 이번 예결위 의원 50명 중 26명이 더 이상 예산을 줄 수 없다고,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라고, 지금까지 한 사업은 조류발전이나 갯벌 학습장으로 사용하라고 하는데 서명했다고 한다.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청신호가 들어온 셈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여야 지도부의 당략적 흥정에 의해 지워지는 것은 아닐는지 자꾸 조마조마해진다.

1천1백34억원의 내년 예산이 통과되면 새만금 파괴는 계속되는 거니까. 97년 말 한 방송사에서 金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였고 나는 패널이었다. 그 때 DJ는 세계의 5대 갯벌을 꿰고 있었다. 나는 서해안 갯벌이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그에게 배웠다.

우리는 안심했다. 저이가 대통령이 되면 환경대통령이 될 거라고. 대통령이 된 그이의 마음 속에 여전히 바다가 있을까, 뻘이 있을까. 새만금은 어떻게 될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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