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화유산을 찾아] 8.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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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서울역 뒤편 서부역에서 아현동으로 향하는 길목 왼편, 염천교에서 마주보이는 언덕 주변은 서울에서 흔치 않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다.

나물을 다듬어 파는 할머니들과 드럼통에 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상인들. 마치 60, 70년대를 상기시키는 거리 풍경이다.

이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약현(藥峴)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성당이다. 1892년(고종 29년) 완공된 약현성당은 역시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신부에 의해 지어졌다.

1892년 짓기 시작한 명동성당의 모델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길이 32m, 폭 12m, 탑높이 22m의 외관 역시 명동성당을 축소해놓은 듯한 인상이다.

프랑스 신부가 설계를 맡았지만 약현성당은 우리 정서를 담은 초기교회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

내부 벽돌기둥을 석조기둥으로 교체한 1921년까지는 성당 중앙에 남녀신자를 구분하는 칸막이가 쳐져 있어서 결혼식때도 신랑신부가 중앙에 난 구멍을 통해 예물반지를 끼워주었었다.

이 성당이 이곳에 자리잡게 된 것은 1801년 이후 네차례의 천주교 박해때 평신자 1백여명이 순교한 '참터(현 서소문공원)' 가 내려다 보이기 때문.

순교자 가운데 정하상.이승훈 등 44명은 지난 85년 한국선교 2백주년 기념식때 성인품에 올랐다.

이런 역사적 가치가 인정돼 1977년 11월 가톨릭교회 건축물 가운데 가장 먼저 국가사적(2백52호)로 지정돼 보존돼온 약현성당은 그러나 98년 정신이상자의 방화로 내부가 훼손되고 종탑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지난 2년간 재건공사를 마친 건물은 외형은 물론, 기둥과 고해소 등 내부까지 원형 그대로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새 벽돌과 출입문.종탑에서 좀처럼 1백년의 역사를 느끼기는 힘들다.

종탑에는 1893년 프랑스에서 들여온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종 '요셉 구스타브 잔느(4백42㎏)' 가 첫 타종을 기다리고 있다.

24일 오후 10시에는 크리스마스 전야미사가 열린다. 성당측은 평소 일반인들의 본당건물 출입을 금하고, 미사나 종교의식때만 이용키로 했다.

김주영 주임신부는 "본당에서 도로로 내려오는 새 길을 내고 성지순례를 위한 기도동산을 설치하는 등 한국최대의 평신도 순교성지로 성역화하는 사업을 펼 계획" 이라고 말했다.

2000년 대희년에 다시 태어난 약현성당에서는 오는 24일 오후 10시 크리스마스 전야미사가 열린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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