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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이 사랑해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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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민서 동생이 갓 태어났을 무렵 마을 어른들은 저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민서가 동생 이뻐 허남? 해코지는 않남?'

그때의 제 대답은 똑 부러졌습니다.

'해코지는요, 얼마나 이뻐한다구요.'

그리고 여섯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자신 있게 내놓았던 그 대답은 이제 변했습니다.

'질투를 좀 하네요. 처음엔 엄마 아빠한테 심술을 부리더니 이젠 동생이 자기 장난감에 손만 대도 소리를 질러요.'

어디 소리만 지르겠습니까? 아예 손을 대기 전에 동생의 눈앞에 있는 물건들을 싹싹 치워버립니다. 동생이 젖을 다 먹고 엄마 품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엄마 품속에 쏙 들어옵니다. 동생을 잠재울 때면 굳이 저도 옆자리에 누워 엄마의 눈빛을 간절히 기다리곤 합니다.

며칠 전에는 그런 일로 벌을 섰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무렵, 동생을 업고 마중을 나가면 민서는 괜한 심술을 부리곤 합니다. 그날도 자꾸만 집과 다른 방향으로 내빼려 하였습니다. 겨우겨우 달래서 집까지 데리고 왔건만 다시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대문 바깥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하릴없이 젖을 물려 동생을 재운 다음 민서를 찾아 나섰습니다. 멀리 가봤자 보건소 앞마당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꽤 떨어진 이씨 아저씨네 너른 마당으로 들어서는 민서를 발견했습니다. 틀림없이 멀리서 걸어오는 엄마를 알아보았는데도 되돌아오기는커녕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이씨 아저씨네 현관문을 두드리고 꾸벅 인사까지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그 집에서는 '오냐, 놀러 왔느냐?'고 반겨주었지만, 달려온 제가 여차여차해서 오늘은 놀러 온 게 아님을 얘기하고 민서의 발걸음을 되돌렸습니다. 마지못해 걸음을 떼는 모습에 더욱 부아가 나서 손에 잡히는 대로 호박 줄기 썩은 것으로 회초리인 양 위협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험악하게 바뀐 엄마의 얼굴을 보고 민서는 으레 그랬듯이 곧바로 잘못했다고 손바닥을 비벼대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저의 무릎에 앉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매몰차게 벌을 계속 세웠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참에 확실히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이윽고 벽을 보고 서 있는 것이 괴로운지 민서는 다리를 비비 꼬기 시작했습니다. 높이 든 두 팔이 자꾸만 어깨 아래로 스르르 내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무너지는 것은 제 결심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야단치려고 벌을 주고 있는지, 민서의 잘못이 정확히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품을 뺏긴 데 대해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엄마를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 것은 아이를 벌줄 만한 그럴듯한 까닭이 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녁밥을 먹으면서 민서는 혹시라도 엄마의 사랑을 잃어버렸는지 눈치를 살폈습니다. 자꾸만 밥을 떠서 제게 먹여주었습니다. 그 밥을 받아먹고 예전처럼 웃어주는지도 살폈습니다. 그 날 밤, 민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제 품에 들어와 잤습니다.

민서가 정신지체아라고 해서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으로 인해 평생 져야 할 마음의 짐을 생각해 둘째를 더 아끼는 것도 아닙니다. 차별 없이 사랑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그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이냐고 제게 묻고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내가 부모 되어 부모의 마음을 알아보리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이즈음에 부모님 생각이 잦아졌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오줌이 마려 눈을 뜨면 새벽 미명에 아버지는 잠들어 있는 우리 남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이제 제가 새벽 미명에 깨어 있곤 합니다. 한때 우리 남매를 고르게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 부모님은 지금 제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는데, 제 아이들이 묻고 있습니다. 차별하지 않고 고르게 사랑해주는 좋은 부모가 되어줄 수 있느냐고….

추둘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