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흑인·야당 끌어안기 최우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지난 13일(한국시간 14일) 승리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는 화합의 업적을 남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제3대) 정신을 따를 것" 이라고 선언했다.

제퍼슨은 1801년 갈가리 찢긴 국가분열 위기 속에서 취임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신인 민주공화당 후보 제퍼슨은 먼저 연방주의당(Federalists)과 치열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연방주의당 신문들은 "제퍼슨이 당선하면 살인.강도.강간.간통.근친상간을 조장하게 될 것" 이라고까지 썼다.

제퍼슨이 선거전에서 승리했으나 선거인단들이 부통령도 민주공화당에서 만들 목적으로 제퍼슨과 애런 버르에게 73표씩을 똑같이 던지는 바람에 대통령 확정을 둘러싸고 하원에서 극심한 대립을 겪어야 했다.

제퍼슨은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 공화주의자이자 연방주의자" 라며 갈등 치유를 시작했다.

부시도 "미국의 대통령은 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하도록 선출됐다" 고 천명했다.

그는 과연 선언대로 화합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국제적인 외교.안보 전선보다 국내통치에서 부시는 휠씬 많은 난관에 둘러싸여 있다.

우선 의회의 야당세력이 만만치 않다.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가 상원의장을 겸임하므로 캐스팅보트는 쥘 수 있지만 의석수만 보면 상원은 공화 대 민주가 50대50으로 완전 대칭이다.

하원은 2백21대2백12다.

물론 1970년대 이후 전임 대통령 대부분이 겪었던 여소야대에 비하면 이는 편한 상황이다.

그러나 부시 당선자가 상대해야 할 2000년의 민주당은 선거전을 치르면서 똘똘 뭉쳤고 야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여야는 개표과정에서 파인 감정의 골뿐 아니라 주요 정책을 둘러싼 이념 차이도 상당하다.

상원은 소수당이라 해도 3분의1 이상만 차지하면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다.

사회 전체로 보면 갈등의 각은 더욱 예리하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 지지세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근로계층.소수민족 등은 연방대법원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고어의 승복연설 후 실시된 로이터.NBC 여론조사에선 50%가 넘는 응답자가 "국가는 분열된 상태로 남을 것이며 부시는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 이라고 답했다.

특히 흑인들의 반감은 두드러진다.

흑인의 90%는 고어를 찍었고 부시 지지는 8%에 불과했다.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는 흑인 인권운동지도자 제시 잭슨 목사는 "연방대법원 결정은 지난 19세기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옹호한 법원 판결과 다를 것이 없다" 면서 "이번 대선은 완전히 도둑맞은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추도일인 내년 1월 15일을 전후로 전국에서 항의시위를 벌일 것" 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부시는 화합을 위한 여러 수순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오는 19일 워싱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후보, 여야 의회지도자를 만난다.

부시 당선자가 내각 등 요직에 민주당 인사를 얼마나 중용할지도 관심사다.

앤드루 카드 백악관비서실장 내정자는 "부시는 텍사스주에서 많은 민주당원들을 요직에 앉혔으며 대통령으로서도 똑같이 할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포용 인선엔 현실적 제약도 많다.

자리는 적은 데 원하는 공화당원은 많다.

거국내각 분위기를 살리려면 상원의원 같은 중량급을 영입해야 하는데 그러면 상원의석이 줄게 돼 민주당이 반발할 수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새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도와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으로서도 상원의 3분의1과 하원 4백35석 전체를 뽑는 2002년 중간선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시는 민주당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고 점진적으로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법안의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0년간 1조3천억달러를 줄이겠다는 감세안 같은 것은 민주당의 거부감이 심하다.

부시는 교육개혁 같이 공감대가 큰 문제부터 접근해야 할는지 모른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