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변호사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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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천지가 개벽해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다스리는 시대가 다시 온다면 맨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모르긴 몰라도 1순위가 군인과 경찰이고, 다음이 판.검사와 변호사 아닐까. 싸우고 다툴 일이 없으니 시비를 가릴 일도, 변론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름하여 '법조 3륜' 이라는 판사.검사.변호사는 인간의 욕심과 불화를 먹고 사는 집단이다. 인간사에 분란과 갈등이 많을수록 빛을 발하는 특이한 직업이 판.검사이고 변호사다.

물론 요즈음엔 월급쟁이 변호사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월급을 받고 사는 직업이 아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해져 송사(訟事)가 늘면 판.검사 입장에서는 업무부담이 가중될 뿐이지만 변호사는 사건과 소송이 많아야 수입원도 커진다.

한달 닷새를 끈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의 지루한 법정싸움은 변호사들의 배만 불려준 셈이 됐다.

"강도가 가진 1백자루 총이 변호사의 서류가방 한 개만 못하다" 는 말은 미국인들이 즐겨 하는 농담이다.

약자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한다는 변호사의 숭고한 이상의 동전 뒷면에는 먹고 산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지난 12일 사상 초유의 변호사 파업으로 프랑스 사법부가 마비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건당 5백70프랑(약 9만3천원)인 국선변호인 보수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3만5천명의 변호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가 국선변호일진대 프랑스 변호사들 벌이가 전같지 않은 모양이다.

갑자기 동업자수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변호사들 형편이 옹색해졌다면 프랑스 사회가 유토피아의 평화상태로 가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프랑스 경찰통계로는 범죄가 계속 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파업을 '국민적 스포츠' 로 여기는 나라에서 변호사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며칠 전 사법시험 2차 합격자 8백1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지난해보다 1백명이 늘어난 숫자다. 지난 96년 2백명을 늘려 5백명을 뽑더니 매년 1백명씩 합격자를 늘려왔다.

법조인력 확충을 통해 대(對)국민 법률서비스를 향상시킨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지만 이렇게 마구 늘려도 괜찮나 싶은 생각도 든다.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일반국민의 법의식은 여전한데 이렇게 늘리다가는 언젠가 우리도 서류가방 대신 피켓을 든 변호사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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