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기업들 북한행 '노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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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대만.일본.유럽의 기업들이 잇따라 대북(對北)경제사절단 파견을 발표하는 등 대북투자를 위한 서방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달에는 스웨덴의 기업사절단과 호주의 에너지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아틀라스코프.볼보.스카니아 등 7개 업체로 구성된 스웨덴 사절단은 중장비의 대북판매와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북한이 평양에서 세계적 다국적기업인 '아시아 브라운 보베리(ABB)그룹' 대표단과 '전기기계설비 생산과 전력망 계통 현대화 협조 합의서' 에 조인하면서 서방기업의 대북투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남북 및 북.미관계 진전에 따라 내년 상반기에는 서방기업들의 대북투자 타진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당장 내년 초에 ▶재일한국인상공회의소의 경제시찰단 2진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경제사절단▶네덜란드의 경제협력사절단 등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또 내년 4~5월께 대만의 무역진흥기관인 CETRA 시장조사단의 방북과, 일본 종합상사 중심으로 구성된 동아시아무역연구회의 평양 국제전시회 참가 및 대규모 경제시찰단 북한 파견 등이 예정돼 있다.

미국 기업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대북투자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한국P&G와 AIG 등 10여개 그룹대표로 구성될 미국의 대북투자조사단은 농업.옷.부속품 등 주로 소비재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다소 호전되면서 시설재를 중심으로 해외구매력이 살아나는 것도 서방기업의 대북진출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다.

북한은 지난 6일 경공업성 산하 경공업 기계구매단 5명을 대만에 파견, 5백만달러 상당의 기계가공설비와 제화기계 구매를 협의 중이다.

지난달에는 평양 인근에 맥주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영국 기업의 맥주 생산설비 등을 1백50만파운드(약 18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자동차.버스의 수입도 부쩍 늘었다.

북한은 올들어 벨로루시의 민스크자동차공장(MAZ)에서 자동차 1백대를 구입했다. 지난 11월에는 북한 대표단이 벨로루시를 방문, 양국의 경제협력 증진방안을 논의했다. 북한은 MAZ와의 경제협력 확대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같은 서방기업의 잇따른 경제사절단 파견과 북한의 시설재 구입에 대해 한국 기업들이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전기설비업체의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자금사정 악화로 대북투자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서방 기업이 진출하면 자칫 북한 시장을 선점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 이라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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