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멕시코 원주민의 7년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1일은 멕시코 역사에 기록할 만한 날이었다.

이날 비센테 폭스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지난 7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폭스 대통령은 단일 정당으로선 세계 최장인 71년에 걸친 제도혁명당(PRI) 독재를 끝장낸 영웅이다. 폭스 대통령이 이끌어갈 멕시코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폭스 대통령의 앞날은 험난하다. 경제발전, 빈부격차 해소, 부정부패 척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남부 치아파스주(州)에서 게릴라투쟁을 하고 있는 사파티스타국민해방군(EZLN)문제도 그중 하나다. 멕시코 인구의 1할인 1천만 원주민 인디오들의 권리투쟁인 치아파스 사태는 1994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지구전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치아파스는 자원의 보고다. 석유.천연가스를 비롯해 커피.옥수수.코코아.바나나 등을 생산한다. 수자원이 풍부해 멕시코 전체 수력전기의 55%를 공급한다.

그런데도 치아파스는 31개 주 가운데 가장 가난하다. 주민들은 진흙집에 살며 수돗물도 공급되지 않는다. 주민의 54%는 영양실조 상태다. 교육.의료혜택은 전국 최하위, 문맹률은 전국 평균의 세 배다.

1910년대 멕시코혁명 당시 농민지도자였던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혁명이념을 계승한 EZLN은 '포스트모던 시대 첫째 혁명투쟁 집단' 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베일에 싸인 지도자 마르코스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유한 가구상 집안에서 태어나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을 거쳐 프랑스에 유학한 마르코스는 귀국 후 치아파스 라칸돈 정글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다 게릴라 지도자로 변신했다.

마르코스는 새로운 형태의 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투쟁을 '언어의 전쟁' 으로 정의하고 인터넷을 통한 지구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EZLN 공식 사이트(http://www.ezln.org)를 비롯해 수백개 관련 사이트가 개설돼 있다. 또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책.인터뷰.편지.에세이 등을 통해 지지세력을 확보해 나간다.

마르코스는 비단 멕시코뿐 아니라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세계 민중투쟁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잡았다.

선거운동 기간 중 자신이 당선되면 치아파스사태를 가장 먼저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던 폭스 대통령은 취임식이 끝난 몇시간 후 치아파스에서 군대 철수를 명령하고, 96년 멕시코 정부가 EZLN과 맺은 원주민 권리보호를 주내용으로 하는 산안드레스협정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하루 만에 마르코스는 정부와 협상 재개를 발표하고 내년 2월 자신이 직접 멕시코시티를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항상 스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말을 탄 모습으로 나타나는 마르코스는 자신의 책 '분노의 그림자' 에서 "멕시코가 가면을 벗는 날 나도 마스크를 벗을 것" 이라고 썼다. 멕시코 정부와 EZLN의 평화협상이 결실을 봐 마르코스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우량. 국제담당 부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