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위원회 선정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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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 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받게 됐다.

이제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주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있다.

그러나 인권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 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하다.

물론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金대통령의 강력한 다짐과 이행, 특히 지난 1년간의 업적이 새롭고 중요한 몫을 더한 것도 역시 명백하다.

국제 평화노력의 역전 가능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노벨상위원회는 "해보려고 애쓰는 시도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는 원칙에 충실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온 조처에 대해 주는 것이지만 평화와 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용기의 문제다. 金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戰線)너머로 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다.

첫걸음이 가장 어렵다. 노르웨이의 작가 군나르 롤드크밤은 그의 시 '마지막 한방울' 에서 다음과 같이 명료하고 적절하게 표현했다.

"옛날 옛적에/물 두 방울이 있었네/하나는 첫 방울이고/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첫방울은 가장 용감했네/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네/만사를 뛰어넘어 우리가 우리의/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그렇다면/누가/첫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

지금 김대중씨는 민주 한국의 대통령이다. 집권까지의 노정(路程)은 멀고도 먼 길이었다. 수십년 동안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어디서 그런 힘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는 "국민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추진해 갈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강도가 침입하면 내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내 자신의 안위는 접어두고 맨손으로라도 강도와 싸워야 했다" 고 말했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씨는 상당한 투표조작에도 불구하고 유효투표의 46%를 얻었다. 이것으로 그는 군사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됐다.

그 결과 그는 여러 해를 처음에는 감옥에서, 나중에는 가택연금과 일본.미국에서의 망명생활로 보냈다. 또 납치와 암살기도를 겪었다.

김대중씨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 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다. 그리고 상을 받지 않았지만 수상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도 닮았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 개혁프로그램으로 대통령에 당선하고 '햇볕정책' 을 통해 북한과의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다.

그의 역할은 동.서독간 관계정상화에 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 수 있다.

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시작됐으며 오늘 상을 받은 김대중씨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다. 시인의 말처럼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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