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클리닉] 아이비리그의 꿈, 자기주도학습에 답 있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21면

5년 전 어느 날 고1 성준이가 찾아왔다. 검사 결과는 기가 막혔다. 자기주도학습의 기본 8가지 요소, 즉 학습동기·공부습관·주의집중기술·문제집착력·기억법·독서법·시험준비 및 시험치는 방법·시험불안 대처법 모두에서 거의 만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중 3~4가지 정도가 50점 이하다.

어떻게 이런 자기주도학습의 대가(大家)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엄마에게 있었다. 성준이 엄마는 대표적인 ‘인스턴트푸드 맘’이었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아이를 쥐어짰다. 영어유치원에서 시작된 조기교육은 초등 1학년 때 사고력수학·논구술학원, 3학년 때 영재학원, 5학년 때 특목고 대비반까지 이어졌다.

잘 따라오는 듯하던 성준이는 중1 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반항하기 시작했다. 가출까지 해서는 담배도 피우고 오토바이를 타는 등 비행 청소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결국 엄마는 ‘백기’를 들었다. 성준이가 원한 것은 모든 과외·학원을 끊고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성준이의 ‘오기’가 발동했다. 거의 한 달에 200만원 이상 사교육비를 쏟아 부어도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하던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전교 1~2등을 다투는 것 아닌가?

성준이는 클리닉에서 좀 더 세분화된 자기주도학습법과 집중훈련, 공부 스트레스 상담을 받았다. 그 후 고교 졸업까지 학원이라고는 고2 2학기 때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학학원을 다닌 것이 고작이다. 성준이는 지금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 입학, 자신이 원하던 스포츠 의학자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섰다.

“여기 미국에 와보니 선생님과 함께 했던 공부기술과 자기주도학습을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있네요? ㅎㅎ. 그런데 그 커리큘럼이 수강률 1위예요. ㅋㅋ” 성준이가 미국에서 처음 필자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이다. 공부를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과정이 소위 ‘공부의 신’이 모여 있는 그곳 최고의 인기강좌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3년 전 서울지역 초·중·고 학생 1112명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저학년 때는 과외학원집단의 성적이 다소 높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격차가 줄고 상위권은 비 과외학원집단의 성적이 높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또 고3 학생 중 16%가 과외·학원을 다녔는데 모두 중하위권이었다.

공부의 주체인 학생 자신이 스스로 해보겠다고 할 때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의 덕목이다. 루소의 『에밀』 중엔 이런 글귀가 있다.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게 해 주는 일이야.”

정찬호 마음누리클리닉 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