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주름살 깊어지자 자살 다시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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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경제가 곤두박질 치면서 자살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통화위기를 겪었던 당시의 자살률을 상기시키며 자살예방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 국제통화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자살률은 전년도에 비해 50% 급증했었다.

성균관대 의대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자살자 세 명 중 두 명 이상이 우울증 환자인데 최근 주식투자 실패와 실직, 실직에 대한 두려움, 개인 파산으로 병원을 찾는 우울증 환자가 봄보다 20~30% 증가했다" 고 설명한다.

상황이 힘들면 누구나 좌절감을 느끼면서 우울한 상태가 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은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이고 주변 사람과 환경에 대해 분노심이 인다.

이때 분노심이 외부로 폭발되면 범죄 등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나고 내부로 향할 때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유교수는 "평상시 성격이 유연성이 없고 변화된 상황에 적응능력이 떨어지면서 쉽게 울적해지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 상황이 악화되면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고 밝힌다.

현재 상황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내가 우울증은 아닌지부터 점검해 보아야 한다(표 참조).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을 땐 가족이나 이웃이라도 우울한 상태가 아닌지 점검해주는 게 좋다.

우울증에 빠지면 세상이 공허해지면서 좋아하던 취미활동조차 관심이 없어진다.

이전보다 식욕도 떨어지고, 매사 행동이 느려지며 무감동.무감각해진 듯 보인다. 가끔씩 초조감을 나타내며 때론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자신이 무가치하고 못났다는 말을 자주 하며 이전보다 우유부단해진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엔 "우리는 당신과 고통을 함께 나눈다" 는 가족이나 이웃의 정신적 지지가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가벼운 우울상태인 사람에겐 살다보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법이며, 절대 당신은 외롭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고 조언한다.

하지만 일단 우울증이 중등도 이상 진행됐을 땐 자가발전하는 속성으로 주변의 지지만으로는 우울한 상태와 자살충동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이땐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효는 3주가 지나야 나타나므로 소중한 물건을 나줘주거나 신변을 정리할 때, '죽는 게 낫겠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해달라' 는 등 구체적인 자살의도가 보일 땐 약물치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일단 입원치료를 하는 게 안전하다.

자살을 계획하다 친구 권유로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K씨(40). "형편이 나쁘긴 해도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사는데 내가 왜 그때 죽을 생각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는 그의 말처럼 자살을 방지하려면 자살충동 위기를 넘겨야 한다.

자살자도 자살 직전까지 죽음은 두렵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한번쯤은 자신이 죽으려고 한다는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단서를 남기고 싶어한다.

권교수는 "자살은 극단적인 소외감을 느끼면서 결심하지만 자살을 시도하기 전 대화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면서 "우리 나라도 심리 전문가가 전화로 무료 상담해주는 위기중재 시설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고 강조한다.

황세희 전문위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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