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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포상금? 온정주의부터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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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호소 드립니다. 최소한 교육계만이라도 깨끗해질 수 있도록,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청와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울 Y고의 비리를 제보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해직 교사 김형태씨가 최근 청와대에 보낸 글이다. 김씨는 2008년 자신이 근무하던 Y고의 각종 비리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가 고발한 Y고의 부패상은 충격적이었다. 급식비 횡령, 체육복 리베이트 수수, 학교 독서실비 불법 징수 등 비리 유형도 다양했다. 고발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의 두 차례 감사 결과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해 3월 해임됐다. 유언비어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였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냈지만 지난해 12월 14일 기각됐다. 그는 바로 5일 전 한국투명성기구에서 공익제보자 부문 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교육계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과후 학교 운영업체로부터 학생 한 명당 1만원씩 받은 전·현직 초등학교 교장 5명이 무더기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자 서울시교육청은 교육 비리를 제보하면 최고 1억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비리 교육 공무원은 금액과 지위를 막론하고 직위 해제한 뒤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내부 비리 신고 활성화 방안을 꼼꼼히 따져보면 솔직히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간다. 가장 큰 문제는 실명 신고만 받는다는 것이다. 익명 신고까지 접수하면 음해 행위가 많다는 게 교과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내부 고발이 가장 어려운 데가 교육계다. 사대와 교대 인맥으로 얽혀 있는 교육계에서 실명으로 고발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을 거는 행위다. 이사장이나 교장에게 찍히는 것은 물론 동료와 선후배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학교 비리를 폭로했다 파면당한 김씨의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쓸 만한 내부 고발이 들어오더라도 서울시교육청이 이를 엄정하게 처리할지도 의심스럽다. 그동안 서울시교육청의 교육계 비리에 대한 조사와 징계는 대부분 ‘솜방망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내놓은 대책도 내부 교직사회의 반발에 부닥쳐 유야무야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육청은 지난해 6월 교육 공무원의 금품 수수나 입찰 비리를 신고하면 최고 3000만원의 보상금을 주는 내용의 조례안을 내놓았다가 철회했다. 또 2008년 3월엔 비리를 저지른 교사·교직원의 실명 명단을 공개하는 안을 추진했다가 무산됐다.

교육서비스의 소비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교육계 비리가 터질 때마다 갑갑하다. 학부모 입장에선 방과후 학교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교장들이 아들의 지갑을 터는 ‘일진회’ 아이들보다 더 가증스러워 보일 것이다. 학원이 맘에 안 들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만 학교는 그럴 수도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진정 교육계의 정화를 원한다면 온정주의부터 버려야 한다. 검찰이나 감사원 같은 외부기관보다 더 혹독하게 내부 비리를 다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목을 걸고서라도 비리를 제보하는 내부 고발자가 늘어날 것이다.

정철근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