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굿바이 구텐베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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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 책은 호흡을 조금 길게 가져가야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다.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앞의 1,2,3장만 읽고 나서 저자가 디지털 미래를 지나치게 장밋빛으로 그리고 있다며 책을 덮어 버릴 독자가 있을까봐 하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저자 김정탁(성균관대.신문방송학)교수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7장 '실물에서 상징으로' 까지는 가야 비로소 전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 몇 개의 봉우리를 넘는다. 하지만 즐거운 등반이다.

저자의 전공인 맥루한은 기본이고, 플라톤에서부터 칸트, 바르트, 보드리야르, 레비 스트로스… 그리고 동양의 유불도(儒佛道)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상을 섭렵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저자는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 의 전문가가 아닌가.

무엇보다 디지털 미래에 대한 접근법이 참신하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문화의 형성이다.

인쇄 미디어에서 디지털 영상 미디어로 바뀌는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회복한 종합적 인간의 발견이라는 미래 전망을 제시한다.

책 제목의 '구텐베르크' 는 인쇄술로 대변되는 서양 근대 이성중심주의를 상징하며, '굿바이' 는 바로 그 이성과의 작별을 통해 그 동안 짓눌려온 인간의 감성을 회복하자는 말을 자극적으로 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인쇄술과 책 문화가 인간의 주요 감각인 시각과 청각 기능을 교란시켰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본래 감성적 시각과 이성적 청각이 조화를 이루며 외부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했는데 인쇄술과 책의 발달이 이러한 조화를 파괴하고, 감성적 시각마저 이성화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시각의 모자이크성(mosaic)의 상실이라고 표현하며, 그로 인해 모든 감각이 이성적 혹은 인과적으로 선형화(linear) 했다고 말한다.

선형성은 피드백이 불가능한 일방향이다. 디지털 영상 미디어시대의 쌍방향적 특성은 다시금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것은 모자이크성의 복원이다. 나아가 김교수는 "인간은 디지털 영상미디어가 보내는 메시지를 시각 하나에 의존해서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시각을 넘어서 온몸으로 수용해야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고 말한다.

'온몸' 의 이해를 통해 이성과 감성의 갈등이라는 서양 철학의 영원한 골칫거리로부터 탈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월간지 연재물의 특성을 살려 그때 그때 시의성 있는 소재를 선택한 순발력이 돋보이지만, 다소 산만한 것이 흠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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