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본 정치] 이총재-박근혜 부총재, 둘만의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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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박근혜(朴槿惠)부총재가 단 둘이 만났다. 국회파행으로 여야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던 지난 21일 오후 7시,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 두 사람만의 만찬은 이번이 처음이며 李총재가 제의했다.

李총재는 먼저 자신의 과거 판사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의 각오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李총재가 정치얘기를 피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잡으려 한 탓일까, 朴부총재는 "왜 그런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고 26일 기억했다. 그런 뒤 朴부총재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라며 세가지 질문을 내놓았다고 한다.

"남북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이념적 정체성은 뭐냐. 李총재가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냐. 아버지(朴正熙 전 대통령)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

당 관계자는 "朴부총재의 질문은 상당히 공세적이었던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단도직입적인 이런 질문에 대해 李총재는 "취지를 잘 알겠다" 고 하면서도 구체적 답안은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李총재는 먼저 당의 민주적 운영을 다짐한 뒤 "朴전대통령이 민족의 역량을 집중시킨 것은 잘된 일" 이라는 정도로 언급했다는 것. 두 사람은 지난 9월 중순 이후 다소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파행 중인 임시국회 등원 여부를 놓고 입장이 갈렸기 때문이며 그 직후 朴부총재는 장외집회에 불참했다.

지난 12일 朴부총재가 해외공관 국정감사(외통위)를 마치고 귀국하자 李총재는 "음악회에 가자" 고 초청했다. 하지만 朴부총재가 거절했고, 그런 뒤 이뤄진 게 이날 만찬이다.

朴부총재는 "李총재가 뭔가 긴밀한 얘기를 하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고 한다. 만찬은 "앞으로 계속 얘기하자" 는 李총재의 말로 끝났다.

이날 만남을 놓고 당내에선 李총재의 朴부총재에 대한 '정치적 구애' 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홍사덕(洪思德)국회부의장.양정규(梁正圭)부총재 등은 "朴부총재와 함께 정국을 운영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고 李총재에게 건의해왔다. 총재실 참모들도 '朴부총재의 돋보이는 대중 동원력과 인기' 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 朴부총재의 면모를 민주당의 차기 주자들도 주목하고 있다. "영남쪽의 헝클어진 민심을 돌파하는 효과적 카드로 '박근혜와의 관계설정' 을 따져보고 있다" 고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 때문에 "내년에 들어가면 여야 주자들 사이에서 '박근혜 잡기' 경쟁이 벌어질 것" 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인간적 매력과 포용력이 넘치는 정치인으로 李총재는 평가받고 싶어한다. 朴부총재와의 단독 만남은 그런 이미지 관리의 하나" 라고 전했다.

李총재는 지난달 초에도 민국당 김윤환(金潤煥)대표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李총재는 4.13총선 때 金대표가 공천 탈락한 데 대해 "본의가 아니었다" 고 해명을 했다는 게 李총재측 설명이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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