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활기차지만 개성·질서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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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젊고 매력적이며 활기찬 도시. 그러나 개성과 질서가 아쉬운 도시"

서울시가 8월중순부터 한달간 실시한 '서울이야기' 수필 공모에 응모한 외국인들의 작품에서 나타난 서울 인상이다.

올해 4회를 맞은 이번 공모에는 내국인 6백21명과 함께 미.일.중.남아프리카공화국.파푸아뉴기니 등 21개국에서 1백5명의 외국인들이 응모했다.

응모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유학생.상사원들이지만, 한국을 잠시 다녀간 여행객들이 현지 한국공관이나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응모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 작품에는 서울의 긍정적인 모습과 함께 부정적인 면모도 비교적 솔직하게 그려져 있어 세계인의 눈에 비친 서울의 현주소를 짐작케 한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꼬집은 점은 교통질서. 어머니가 한국인인 수잔 페이지(미국)양은 "정지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과 아슬아슬하게 차 옆을 스쳐가는 오토바이에 깜짝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고 적었다.

특히 덩치만을 믿고 복잡한 도로에서 곡예운전을 펼치는 버스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

서울을 다녀갔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졸란디 반 니케르크는 "(서울의)버스에는 버스만의 독특한 교통규칙이 있는 것 같다" 고 꼬집었다.

정류장을 지나쳐 세우는 바람에 버스를 타기위해 우루루 뛰어가는 시민, 도저히 더 태울 공간이 없을 것 같은 출근길 만원버스에 올라타는 승객 등도 외국인들에겐 불가사의한 풍경으로 비쳤다.

서울사람들이 유행에 너무 민감하다보니 오히려 개성이 모자란다는 지적도 많았다. 러시아 교포 2세 김율리아는 "서울에 와 보니 젊은이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헤어스타일과 염색을 하고 있어 신기하게 비쳤다" 며 "아마 강한 공동체의식을 지닌 단일민족이라 그런 모양" 이란 분석까지 내놓았다.

명동의 한나절을 소재로 엮은 한 수필은 "젊고 매력적이며 활기찬 여성들의 모습이 마치 모델같지만 옷차림과 화장이 너무 비슷비슷하다" 고 적었다.

서울시민들의 좁은 아량을 아쉬워하는 조선족의 글도 있었다. 국제교육진흥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이미옥씨는 "억양이 다른 한국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신경이 너무 쓰여 입을 열기가 무서웠다" 며 할아버지 나라에 대한 섭섭함을 털어놓았다.

이런 '흠' 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활력있는 모습으로 빠르게 국제화하고 있다는 데에 외국인들은 동의했다.

소피 에넌(프랑스)은 "4년만에 다시 찾은 신촌거리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과거 탁자마다 전화기가 놓였던 커피숍이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다 사라졌다" 며 빠른 변화를 놀라워했다. 자신이 즐겨찾던 구두집을 찾을 수 없게 됐다는 불평을 곁들이긴 했지만 -.

인도 유학생 아라빈다 드위베디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서울사람' 이란 일반적 인상과는 정반대의 견해를 표시했다.

"웬만한 곳에는 영어표지가 돼있어 쇼핑이나 외출에 별 불편을 못 느끼고 있다. 사람들도 이젠 외국인을 무조건 피하지 않는다" 며 서울의 국제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밖에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는 미국인, 이산가족 상봉 모습에 코 끝이 찡했다는 중국인의 글도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성경준(외대 영어과)교수는 "외국인의 글속에서 우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서울의 아름다움과 부끄러운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고 말했다.

한편 외국인 대상은 남산의 아름다움을 쓴 일본인 유학생 후카노 쇼이치(深野正一.30)가, 내국인 대상은 연희동에 얽힌 추억을 그린 김재득(46)씨가 차지했다. 입상작 76편은 다음달 하순 책으로 발간된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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