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시대에 뒤처진 경제학 교과서 리콜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원래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라고도 한다. 다른 어떤 사회과학 분야보다도 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동원해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그 때문에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 이후 여건의 변화와 함께 그 본류를 계속 바꾸어 왔다. 1930년대 들어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스 경제학이 등장해 정부 개입의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그 후 1970년대를 거치면서 고(高)인플레와 고실업에 대처하는 방편으로 자유방임적 시카고학파가 득세해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정부의 개입은 작을수록, 그리고 민간의 자율은 클수록 좋다는 사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경제학은 또다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굳게 자리 잡아 온 이른바 ‘작은 정부와 큰 시장’ 논리가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뿐 아니라 어느 경제학도 지난 대공황 이후 발생한 대(大)재난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결과 거시경제학 무용론 또는 경제학 반성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과연 정부는 작을수록 좋은가? 또 시장은 만능인가? 앞으로 경제학의 주류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케인스학파가 지녔던 주도권이 시카고학파로 넘어갔다가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그대로 있을까, 아니면 바뀔까, 바뀐다면 어떤 내용으로?

이러한 문제는 단순한 궁금증의 도(度)를 넘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왜냐하면 정부나 기업이 금융위기를 겪고 난 후에도 종전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곧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금융위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많은 경우 업계의 도덕적 해이는 여전하고, 정부를 비롯한 각 경제 주체들이 벌써 금융위기 자체를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여기서 필자가 제기하는 것은 앞으로 경제학 이론을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거나 정부 또는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지금 당장 시중에 나와 있는 한물간 경제학 교과서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 곧 봄이 오고 신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이 책을 사러 몰려올 텐데. 그런데도 철 지난 불량품의 저자들은 별 움직임이 없는 것 같다. 살 만한 책이 없다고 실망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학생들이 책을 사고 나서야 그 책이 틀렸다고 얘기할 건가. 아니면 교실에서 책의 내용대로 계속 가르칠 건가. 일반 상품 같으면 리콜이라도 할 텐데, 왜 책은 그런 것이 없는지. 이래저래 교과서 없는 미래, 즉 교과서 무용론을 재촉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