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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혁신 없는 분권 확대는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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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얼마 전 인천시장이 2억원이 든 굴비상자를 받은 것이 화제가 됐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져 '인천시장에게만 이런 일이 있겠느냐'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자치단체마다 설치된 클린센터에 접수된 뇌물 내역을 보도하면서 신고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청렴하게 직무 수행에 열심인 다른 자치단체장들까지도 싸잡아 의혹의 대상이 된 셈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이 자칫 지자체의 부패 가능성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중앙정부의 행정.재정적 권한을 지방에 이전하고 자원의 분산 및 지역경쟁력 제고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중앙과 지방 간 관(官)끼리의 분권으로만 그쳐 오히려 지방정치의 독점적 영향력을 강화해 주고, 반면 이를 견제할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분권은 반드시 지역의 자기혁신을 동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중앙의 권한과 재원이 주어져도 비효율과 낭비만 일삼아 지역을 오히려 피폐화시킬 뿐 아니라 결국에는 다시금 중앙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채택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에는 이러한 지방의 자기혁신에 대한 강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국을 순회하며 지역혁신토론회를 열었지만 그 혁신은 산업기술적 측면에서의 혁신(inovation)으로만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서의 지역혁신체제도 지식의 창출과 확산을 목적으로 기업과 관련기관들이 협력체제 구축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부패와 무능의 지역유착 구조를 척결한다는 민주적 지방정치의 혁신(reform)과는 번지수가 달라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의 전반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하는 주민소송법은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대학.지방기업.지방언론에 대한 자치단체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는 식의 무조건적인 분권.분산은 오히려 국가적 낭비를 가져올 뿐이다.

중앙 집중과 불균형발전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분권 분산을 서두르며 단기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분권과 균형발전이 중앙부처의 반발로 표류해서도 안될 일이다. 분권, 균형발전 정책을 펴되 지방의 민주적 혁신이 동반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정책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참여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본란은 전국 16개 시.도의 72명 오피니언 리더가 참여, 지난 4월 결성된 중앙일보의 '전국 열린광장' 제2기 위원들의 기고로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