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박부리씨 한국전통문화학교 수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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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0여년이 지나 다시 수험공부를 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는 의지로 버텼죠."

올해 두번째로 신입생을 뽑은 충남 부여 소재 한국전통문화학교(4년제.총장 金秉模)입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박부리(朴富利.31.대전 서구 탄방동)씨.

그녀는 13년전 공주사대에 수석 입학했던 전직 여교사로, 현재는 대전에서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개인교습을 하고 있다.

모두 1천2백명이 응시(모집 1백명)한 가운데 올해 신설된 전통건축.조경학과군을 지원한 朴씨는 1천1백점(필기 8백.내신 3백점)만점에 1천31.2점을 얻었다.

1987년 충남여고를 수석 졸업한 그는 성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일류대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4남매 집안의 맏딸로서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을 감안, 평소 꿈꿔온 시골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공주사대 영어교육과에 진학했다.

92년 3월 논산 노성중 교사로 첫 교편을 잡은 朴씨는 하지만 동료 교사와 학생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 3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특별한 생계대책도 없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스스로 그만 둔 것이다.

"몸이 약해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는데다 교사라는 직업이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워 결단을 내렸던 거죠. "

과외강사로 생계를 꾸리던 朴씨는 우연히 전통문화학교가 생겼다는 신문 보도를 본 뒤 문화재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중학교 교사' 에서 '고교 수험생' 신분으로 돌아간 그녀는 지난 두달간은 과외교습도 그만둔 채 교과서와 씨름해 영광을 차지했다.

미혼인 朴씨는 "결혼보다도 공부를 계속해 문화재 전문가가 되고 싶다" 고 포부를 밝혔다.

대전=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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