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부재자 뚜껑 열면 안개 걷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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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의 선관위가 15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법원이 정밀 재검표를 하라고 판결을 내릴 때까지 수작업 재검표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당초 18일께로 예상됐던 수작업 재검표 완료시점이 늦춰지게 됐다.

플로리다주 내무장관인 캐서린 해리스가 이날 오전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제출한 모든 수작업 재검표 중단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혼란은 빠른 속도로 정리된다.

그가 별도로 요청한 대로 재검표와 관련한 모든 소송을 주 대법원이 일괄적으로 다루기로 하면 사태는 전면적인 소송전을 피하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해결국면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이로써 17일 자정까지 도착하는 해외 부재자표가 이번 미 대선의 승패를 가를 가능성이 커졌다. 해외 부재자표는 대선 선거 당일인 7일자까지의 소인이 찍혀 있고 17일 자정까지 도착하면 유효하다. 개표는 18일 오전이다.

1996년 대선 때의 예를 보면 플로리다주의 부재자는 3만여명이었고 이 가운데 3천명이 우편투표에 참여했다.

당시 부재자의 56%가 공화당을 지지했으나 올해는 해외 유대인들이 고어측을 지지해 결과가 반대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여기서 몇 개의 시나리오가 나온다. 먼저 고어가 부재자 개표에서 부시보다 3백표 이상 앞설 경우다. 플로리다주 당국이 14일까지 공식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주 전체에서 부시 후보가 3백표를 앞섰다.

따라서 고어가 만일 부재자 투표에서 3백표 이상의 차이로 이기면 팜비치의 수작업 재검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당선한다.

하지만 부재자표 개표에서 부시가 현재의 표차보다 차이를 더 벌리면서 이길 수도 있다. 그렇게되면 플로리다주 당국은 18일 오전 중으로 '부시 승리' 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고어측은 팜비치 등의 수작업 재검표가 18일보다 한참 뒤에 나올 것이기 때문에 주당국의 선언을 인정하지 않고 팜비치에서 수작업 개표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

팜비치의 최종 재검표 결과를 포함해도 플로리다주에서 부시가 이기면 부시의 당선으로 막을 내리겠지만 만일 고어가 이길 경우 그는 주당국의 선언과는 무관하게 "내가 이겼다" 고 주장할 수 있다.

제43대 미국 대선에서 승리자가 두명이 생기는 셈인데 그 경우 팜비치의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인정해야 할지를 놓고 지루한 소송이 시작된다.

앞서 14일 플로리다주 순회 판사인 테리 루이스는 "캐서린 해리스 플로리다주 내무장관이 일반 투표의 개표결과 보고시한을 14일 오후 5시까지로 못박은 것은 적법하다" 고 밝혔다.

수작업 재검표를 계속하기 위해 보고시한을 연장해달라는 민주당측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 판사는 곧바로 "수작업 재검표를 하는 카운티들은 나중에 그 결과를 주 내무장관에게 보고하고 장관은 독단적으로 이를 무시하지 말라" 고 덧붙였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손을 동시에 들어준 셈이다.

이런 어중간한 판결에 비춰 만일 앞으로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두고 긴 소송이 벌어질 경우 미 정국은 다시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미 한 번씩 소송을 낸 공화당 조지 W 부시나 민주당 앨 고어측은 플로리다의 판사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됐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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