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2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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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6. 인체 연구 병행

거듭된 실패로 초조해 있던 나는 1974년 들쥐의 비장(脾臟)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볼리비아출혈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칼로미스란 이름의 들쥐는 정상 쥐보다 10~20배 이상 커진다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얻은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유행성 출혈열을 옮기는 들쥐인 등줄쥐의 비장도 커져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김수암씨를 동원해 유행성 출혈열이 발생하는 지역마다 찾아다니며 수백마리의 등줄쥐를 생포해 배를 가른뒤 비장을 살폈다.

그러나 비장이 커진 쥐는 한마리도 없었으며 현미경으로 살펴도 조직학적인 이상을 찾아내지 못했다.

70년부터 미군의 연구비로 시작한 나의 유행성 출혈열 연구는 4년째 조금의 진전도 보지 못했다. 쥐의 체내에서 바이러스를 찾아내려한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젠 사람을 연구하기로 했다. 감염된 사람의 체내에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항체가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지금은 보편화된 방법이지만 당시로선 첨단기법인 전기영동법과 한천면역확산법을 동원해 한국인은 물론 미국인 감염자의 혈액까지 조사해봤다.

74년말 나는 드디어 조그만 개가 하나를 올리는데 성공했다. 유행성 출혈열 감염자의 혈액엔 몇가지 종류의 특이한 항체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항체를 찾아냈으니 이제 이 항체를 이용하면 환자나 들쥐의 조직 속에 미꾸라지처럼 요리저리 피해가며 정체를 밝히길 거부하는 바이러스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바이러스 항체)를 찾았으니 이제 이 구두에 맞는 발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바이러스 항원)만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형광항체법과 면역전자현미경이란 첨단기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환자와 쥐의 조직을 항체와 혼합하고 형광색소를 투입한 뒤 전자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나는 형광현미경도 구입하고 비록 중고품이긴 하지만 냉동조직절단기를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았다.

새로운 실험기법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연구진의 일원인 이평우조교를 가톨릭의대 병리학교실에 파견했다. 이때부터 1년간이나 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연구를 거듭할수록 우리의 테크닉은 늘어갔으나 정작 원하던 바이러스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들쥐의 장기 가운데 폐장만 버리고 나머지 장기는 다 검사했다. 폐장은 유행성 출혈열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장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행성 출혈열은 콩팥을 공격해 신부전증 등의 질환을 일으켜 환자를 사망케 하므로 바이러스는 분명 콩팥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것이 나의, 아니 지금까지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를 찾아내기 위해 달려든 전세계 모든 과학자들이 실패한 원인이었다.

75년 가을 나는 일본에 있던 미육군 의학연구개발사령부 마셜대령으로부터 더이상 나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어렵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지금도 내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은인으로 무려 6년간에 걸친 미육군의 연구비 지원을 가능케한 후원자였다.

그러한 그로부터 이젠 자기도 어찌 할 수 없다는 소릴 들어야했다. 미육군성에서 지지부진한 내 연구결과에 대해 연구비를 더이상 낭비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 연구의 돈줄이었던 의학연구개발사령부도 76년 3월에 폐쇄된다는 것이 아닌가.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를 찾아내기 위한 나의 노력도 이제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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