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기행] 3. 오리엔트와 옥시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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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양에선 일찍이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전통적인 학문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오리엔트(orient.중동지방을 이르는 용어)는 서구 유럽과 지리적으로 근접한 곳일 뿐만 아니라 위대하고 쓸모있는 오래된 식민지였다.

한편으로는 '우리와 그들은 다르다' 는 인식을 가능하게 한 거울이기도 했다. 서양은 곧 오리엔트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를 인식한 것이다.

미국 콜럼비아대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가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 에서 지적했듯이, 서양 사람들의 오리엔트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오리엔트, 즉 아랍은 비이성적이고 위협적이며 반 서구적이다. 이런 이미지는 아랍이 중동에서 태동하기 9백년전, BC 6세기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 때 이미 형성됐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역사' 는 바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사다.

서양의 시작이라는 고대 그리스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페르시아인은 자기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후 로마의 행정 문서에서 처음으로 오리엔트에 대한 대비 개념으로 '옥시덴트(oxident)' 가 등장했다.

라틴어에서 오리엔스(oriens)는 '떠오르는 태양, 동쪽' 을 의미한다. 인류의 4대 문명인 중국의 황허(黃河).인더스.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다 이 오리엔트에서 일어났다.

반면 옥시덴스(oxidens)는 '해가 지는 곳, 서쪽' 을 뜻했다. 이 양극적인 개념으로서 오리엔트와 옥시덴트는 AD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럽인들의 사전(辭典)에 본격 등장한다.

유럽인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당시 예루살렘에 살던 오리엔트인 즉, 아랍인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그들이 보기에 아랍인들은 낯설고 신비하며 색정적인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도래하자 유럽인들은 제국주의의 일환으로 중.근동 지방를 식민지화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도구였던 오리엔탈리즘이 '오리엔탈 르네상스' 를 태동시킨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당시 파리의 최고의 학자들을 동원해 2천년 동안 장식으로만 알았던 '돌에다 새긴 글자' 인 성각문자(hieroglyph)를 판독하고 그 문화를 부활시켰다.

이와 비슷한 시기 독일과 영국학자들도 페르시아의 수도 페세르폴리스와 베시히툰산에서 발견된 '못과 같이 생긴 글자' 인 쐐기문자(cuneiform)를 판독했다.

오리엔탈리즘이 주도한 오리엔탈 르네상스는 2천5백여년 동안 획일적으로 그려오던 동서양의 구분을 허물기 시작했고,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오리엔트의 위상을 조금씩 높혀주기 시작했다.

그리스에 알파벳을 가져다 주어 호머의 '일리야드' 와 '오딧세이' 를 문자화 하도록 한 주인공인 '카드모스' (Cadmos)의 어원은 다름 아닌 오리엔트의 언어인 셈어의 어근 q-d-m(동쪽)에서 유래했고, 페니키아의 왕인 아게노르의 딸로 황소로 변장한 제우스에게 납치 당한 '유로파' (Europa.오늘날의 유럽)의 어원도 다름 아닌 셈어의 어근 '-r-b' (해가 지는곳, 서쪽)에서 유래했다.

유럽이란 단어가 그들이 오리엔탈리즘으로 식민화한 아랍과 같은 어원인 사실은 역설적이다.

배철현 <미 하버드대 문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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