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본 정치] '인사 편중'을 보는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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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동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여론이 협조해주지 않고 있다. "

김대중 대통령은 4일 민주당 고문단을 청와대로 불러 이렇게 아쉬움을 표시했다.

"영남권 방문도 언론에서 잘 다뤄주지 않고, 국민들은 낭설만 믿고 있다" 고도 金대통령은 주장했다.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金대통령이 내치(內治)의 한 축으로 다시 가다듬고 있는 것이 동서화합론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자신의 그런 열정을 정치인과 언론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그런 감정이 지난주 부산.울산.경남 방문 때 나타난 것으로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한다. 金대통령은 "지역감정을 선거에 악용해 거짓말로 선동한다" "필요한 숫자만 인용해 상업주의로 선정적으로 보도한다" 고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金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배경에는 지난달 29일 경주의 문화엑스포현장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金대통령은 엑스포 관람자들이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것을 보고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지역민심을 잘못 소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金대통령의 판단은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 1일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를 만난 시민단체 대표들은 "인사편중 문제가 심각한 민심이반 요인" (이정자 시민지원기금 이사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국세청 요직의 지역편중 현상에 대해 "개혁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우리 사람을 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는 청와대 핵심참모의 항변이 오히려 솔직하게 느껴진다.

국정 장악을 위한 인적 포석과 지역 탕평책 인사 사이에 金대통령의 고민이 감춰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갈수록 지역 편중인사 논란이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청와대는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여성유권자연맹 이춘호 회장은 "金대통령이 이너서클에 속한 사람을 쓰는 것은 당연하나 밑에까지 하는 것은 심하다" 고 꼬집었다.

실제 현 공직자들의 출생 시점인 1950~70년대 영호남 지역 인구 비율을 기준으로 할 때 1.27대1이 동서화합의 적정비율이라는 것. 그러나 이 기준을 적용하면 "대부분 부처에서 3급 이상 공무원 비율이 호남편중이라는 비판이 나올 소지가 있다" 고 여권 관계자는 말했다.

지난달 25일 金대통령은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 공정성에)잘못이 있으면 단호히 시정할 것" 이라고 다짐했다.

청와대 핵심 참모도 "논란이 되고 있는 金대통령의 부산 발언은 해법이 아니다. 다만 심중에 있는 불만을 드러낸 것일 뿐" 이라며 인사편중의 가시적 조치가 별도로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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