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인생 풀어낸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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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화가 되어버린 빈센트(1853~1890), 그는 이미 거론될 만큼 거론된 인물이다. 그러나 예단하지 말자. 이 책은 또 하나의 고흐 신화를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서술형식이 별나다.

저자 민길호(53)는 그 자신이 고흐가 되어, 가슴으로 그림을 그렸던 고흐의 바로 그 가슴이 되어 고흐의 영혼을 불러내는 특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 결과 박제된 고흐가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인간 고흐' 를 겨냥하고 있다.

자서전 형식인 이 책의 주어는 '나' . '나' 는 한편으로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고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고흐와 동화되어 인간 실존의 근원적 고뇌를 그리고 싶어하는 저자 민길호의 고백이기도 하다. 두 개의 '나' 가 펼쳐내는 이중주,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진실이기도 하다.

가족과 사회 그리고 여인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인생의 패배자라는 좌절과 굴욕감 속에서, 오직 그림 그리기만이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는 구원자였다.

이 책에선 73점의 고흐 대표작을 컬러 화보로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단순한 덤이 아니다. 이 책을 끌고 가는 또 하나의 축이다.

역사적 고흐의 생애 순간 순간을 그림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원고지 두 세매 분량의 그림 설명이 하나같이 모두 살아서 춤을 춘다. 이 춤의 안무가 민길호의 고흐 그림 해석에 대한 관점이 궁금하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서 서양화가이자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고흐를 빌려 전하는 육성을 들어보자.

'그림은 사진이 아닙니다. 그림은 그리려고 하는 대상의 내적인 요소들을 각자의 개성에 따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는 상징적 표현도 필요합니다. ' (71쪽)

'가정을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새둥지 그림에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렸습니다 어두운 뒷 배경 속에 둥그렇게 그린 새들의 보금자리. 그러나 그 둥지는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75쪽)

창작자 고흐와 해석자 민길호의 연결고리를 푸는 열쇠는 '상징성' 이다. 다양한 해석의 열린 공간 속에서 창작자와 해석자는 새롭게 만난다.

하지만 '자화상' 에 대해 "일본의 승려같이 머리를 짧게 깎은 저의 모습입니다…. 이미 이 세상의 속된 것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아닙니다.

그 먼 곳에서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부처님을 동경하는 엄숙한 불자의 눈동자입니다…. " (175쪽) 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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