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이 가까워지는 가정' 점차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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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사 돈~. 아범과 에미가 바빠서 공사장에 자주 가보지 못하니 우리가 종종 들러봅시다."

"물론이지요. 애들도 애들이지만 우리도 함께 살 집인데 서로 신경써서 챙겨야지요. "

분당신도시 이매동의 한 주택 공사장. 지난 22일 오후 망치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두 노부부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 저곳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이들은 17년전 아들과 딸을 서로 나눈 사돈사이. 아들 부모인 이장복(68).박성자(69)부부와 딸 부모인 부윤형(74).정신옥(71)부부다.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양 사돈은 자식 내외, 두 손자들과 한 집에서 살게 된다.

양 집안이 합치는 데는 아들 이유원(목사)씨와 딸 부정선(치과의사)씨의 설득도 있었다고. 아들 내외는 합치는 것이 좋은 이유를 몇가지 댔다.

'노인들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니 서로 말동무하면서 운동도 같이 하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 딴 집에서 각자 사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손자들과 사는 3세대 가정이 우리나라의 덕목 아닙니까' 등등.

며느리 부씨는 "양가가 합치는 게 꼭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그러나 '대단한 가정엔 대단한 일이지만 평범한 가정엔 평범한 일' 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씨 내외의 설득도 설득이지만 양 사돈이 평소 종교생활을 함께 하며 형제.자매처럼 지내온 것이 거부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적어도 이 집안에선 '사돈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 란 옛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들어 사돈이 서로 가까이 살면서 여가생활이나 취미활동을 같이 하거나 아예 한지붕 아래 함께 사는 사돈까지 등장하고 있다.

근엄하게 예의만 따지던 바깥 사돈끼리 사우나를 함께 하는 등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10년전 막내아들과 둘째딸을 결혼시키고 안사돈 사이가 된 윤용숙(64).황덕희(66)할머니.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북부노인종합복지관에서 소문난 단짝이다.

서로 사는 곳이 가깝지 않은데 일주일 내내 이곳에서 만나 에어로빅.포켓볼까지 함께 즐기며 급하면 사돈이란 호칭 대신 이름도 불러댄다고.

이들의 며느리자 딸인 박상순(38)씨는 "사돈끼리 가깝게 지내다 보니 우리 부부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노출된다" 며 "부부간에 언짢은 일이 있으면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먼저 나서서 풀어주다 보니 아직까지 제대로 부부싸움도 못해 봤다" 며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한 동네에 사는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종종 목욕탕에서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김인수(20)군은 "두 할아버지가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 고 전했다.

한국심리교육연구소 이세용 소장은 "경제적.정신적인 여유가 생기고 자식 수가 적어지면서 며느리를 딸로, 사위를 아들처럼 받아들이는데서 기인한다" 고 진단한다.

그는 또 "맞벌이의 보편화로 친정 부모들이 딸집을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사돈간에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 이라고 덧붙였다.

북부노인종합복지관 박준기 과장은 "사돈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자녀들이 꾸리는 가족관계는 불협화음 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선 아직 사돈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의 관계다. 심지어 자식쪽에선 양쪽 다 불편하다, 귀찮다는 생각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사돈이 가까워지는 가정' 이 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작은 청신호임에 틀림없다.

유지상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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