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요란한 간판, 상인들이 아름답게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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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간판을 정비하기 전의 일산 신도시 문촌 17단지 상가 모습(왼쪽)과 간판을 정비한 뒤의 모습(오른쪽). 간판 전시장을 방불케 했던 상가 건물 외벽이 ‘1업소 1간판’으로 깨끗이 단장됐다. [고양시 제공]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주엽2동 문촌 17단지 상가. 왕복 6차로변에 위치한 상가 건물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간판으로 도배돼 있다시피 했다. 지상 2층짜리 건물 외벽 전체에 울긋불긋한 대형 간판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건물 바깥으로 튀어나와 눈에 거슬리는 세로 간판들도 부지기수다. 가게마다 2∼3개의 간판을 경쟁적으로 내걸어 놓았다.

#27일 은행·부동산중개업소·미용원·수퍼 등 16개 가게가 입주한 이 상가 건물이 유럽의 세련된 건물처럼 바뀌어 있다. 덕지덕지 내걸렸던 간판들은 다 사라지고 가게마다 아담한 크기의 간판이 한 개씩만 걸려 있다. 세로 간판들은 자취를 감췄으며 은행이 입주한 2층에는 아예 간판을 찾아볼 수 없다. 1층의 간판들도 평면판 위에 입체형 글자가 부착돼 예술미가 돋보인다. 밤에는 간판에 경관 조명이 비치고 입체글씨에 불이 켜지면서 화사함을 더했다.

일산신도시 문촌 17단지 아파트단지 내 상가 건물들의 겉모습이 확 달라졌다. 흉물스럽게 건물을 가리고 있던 간판들을 가게 주인들이 자율적으로 철거하고 아름다운 간판으로 교체한 덕분이다.

가게 상인들이 간판 정비에 본격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 문촌 17단지 상가 최복주(57) 번영회장이 앞장섰다. 최 회장은 “크고 요란한 간판들이 아파트 전체 미관을 해치고 상가 발전을 막고 있다는 생각에 간판 자율 정비에 팔을 걷어붙였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간판이 작아지면 장사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며 반대하는 일부 상인으로 인해 어려움도 겪었다. 최 회장은 아파트부녀회·관리사무소까지 끌어들여 “상가 외관을 깨끗하게 바꿔 보자. 시에서 간판 교체 비용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비용도 가게별로 1만∼2만원만 들이면 된다”며 설득해 나갔다. 설득에 나선 지 보름 만인 지난해 11월 초 16명의 가게 상인 전원으로부터 간판 자율 정비에 동참한다는 대답을 얻어 냈다. 간판이 아름다운, 쾌적한 상가를 만들자는 운동에 상인 모두가 공감한 것이다.

상인들은 ‘1업소 1간판’을 원칙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던 옛 간판들을 말끔히 정비했다. 간판 철거를 비롯해 건물 외벽 청소 및 보수, 도색 후 간판 재설치 같은 궂은일에도 점포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덕분에 지난주 간판 교체 작업을 마무리했다.

문촌 17단지 상가는 가게 주인들이 뜻을 모으면 고양시가 간판 교체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이곳 상가는 고양시와 경관 협정을 체결, 간판 교체 비용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또 간판 디자인은 고양시 경관 계획 수립 용역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대 산학협력단 디자인팀으로부터 받았다.

최 회장은 “간판 정비 후 지역주민들로부터 ‘동네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인사를 자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서만 인근 상가 세 곳에서 벤치마킹해 갔다. 일산 신도시에서는 강촌 2단지와 문촌 4단지의 아파트 상가 건물들도 같은 방식으로 간판이 아름다운 건물로 변신했다.

강현석 고양시장은 “주민 스스로가 느끼면서 만들어 가는 경관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도시 디자인”이라며 “이 같은 움직임이 경관이 아름다운 도시로 가꿔 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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