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행복' 이라는 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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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위하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으리라. 내적인 변덕과 권태나 외적인 경쟁상대가 없다면 저 순진한 바람은 성취될 수 있다.

그러나 너나없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 그러니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취하려고 하는 방황자들의 마음을 잡고 나름대로 자기 몫이라고 규정한 것을 얻거나 지키려면, 건강하고 멋진 몸을 만들고 그 위에 학력.재력.권력.명예 등을 걸쳐야 한다.

행복을 잡으려고 모든 사람이 갖가지 궁리를 다해 보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이 경치나 무지개와 같아서 가까이 다가서면 다시 멀리 떨어져 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행복이 있을 것 같아 경쟁이 치열한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보면 오히려 좌절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행복은 다수결에 의해 정해지거나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번에는 나홀로의 길로 가서 "나 스스로 행복하다" 고 외쳐 보지만, 고독감과 함께 "내가 제 길을 가고 있는가" 라는 회의가 든다.

"반드시 행복해야 돼" 라는 생각 속에 살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짐꾼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우리의 무거운 짐이 된 것이다. 노예인지도 모른다. 행복에 보탬이 되리란 기대에서 우리는 사랑.돈.힘.명예라는 족쇄에 묶여 그것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달마대사와 그의 제자가 나눈 대화를 알고 있다. 제자가 "제 마음이 괴로운데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묻는다. 선사는 "너의 괴로운 마음을 가져오면 내가 편안히 해주리라" 고 대답한다.

제자는 괴로운 마음을 찾아보지만 잡을 수가 없다. 머뭇거리는 제자를 향해 선사는 "너의 마음은 이미 편안해졌다"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제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즉 최고 행복의 길을 터득한 것이다.

우리가 억지로 행복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불행은 없다. 행복을 지우면 그 반대도 자연히 지워진다. 행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무감은 참으로 무거운 짐이다.

그 짐을 내려놓으면 자유인이 된다. 우리가 행복이나 안락으로부터 벗어난다면, 모든 욕망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돈과 사랑과 명예의 놀림감이 되지 않을 수가 있다.

행복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에게는 어렵거나 무서울 것이 없다.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상대가 기다리라고 한다면 일년을 한 시간처럼 기다릴 수도 있고, 세상이 그가 가진 것을 남김없이 빼앗으면서 그의 인내심을 떠보더라도, 그는 괴롭다는 생각조차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당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 마당에, 지킬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손해 볼 것도 없다. 하는 일마다 소득이요, 남는 장사가 된다.

그래서 금강경에 "부처는 부처를 지움으로써 그 이름이 부처라고 하느니라" 는 구절이 나온다. 모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부처이지만, 그 부처가 되고자 하면 그 역시 또 다른 욕망의 짐이 된다.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지울 때, 부처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현상이 자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번다는 생각이나 쓸 시간조차 없다.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이는 행복을 잡거나 누린다는 생각조차 없다. 행복의 현상이 자연적으로 그의 앞에 나타날 뿐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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