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 산책] 기계가 대신해버린 가을걷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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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가을비는 장인 나룻에서도 피할 수 있다던데 제법 추적거리더니 한결 더 썰렁해진 게 옷깃을 여미게 한다.

김포 땅끝 보구곶에도 문수산 꼭대기로부터 내려오던 단풍이 빗줄기를 타고 마을까지 곤두박질쳐 동네 어귀를 지키고 있는 느티 당나무의 이파리까지 새빨갛게 멍들여 놓았다.

강화대교를 건너기 바로 전에 오른쪽으로 굽이져 들어가는 십리길 여기저기, 억새가 흰 머리털을 날리는 사이로 멋대로 자란 코스모스가 들국화와 수줍음을 다투고, 밭뙈기들에는 무.배추가 김장을 고대하기라도 하는듯 가냘퍼진 햇살에 기대어 속을 채우고 있다.

"이럭저럭 또 한 해가 저무는구나-. " 하릴없는 상념에 젖어 넋을 놓고 있는데 대여섯 마리의 까마귀떼가 논바닥에 내려앉는다.

요즘은 희귀조가 돼버렸지만 예전엔 하늘을 뒤덮는데다 송장냄새를 맡고왔다고 해서 침 세례를 받던 그런 새다.

정신이 버쩍 든다. 한동안 그놈들 노는 양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맘때면 곳곳에 산더미 같은 노적가리가 그득그득하고 여기저기서 타작마당이 벌어져 한창 흥청거릴 판인데 저물어가는 가을빛의 쓸쓸함뿐이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란 말인가.

영농이 기계화된 탓이다. 본시 농사란 것이 여름내 사등이뼈가 휘청해도 가을은 역시 손맛인데, 트랙터다 콤바인이다 해서 기계 추수를 하다 보니 영 들판 전체가 생기가 없어진 게 풍경이 말씀이 아니다.

가을걷이를 해봤자 장(醬)값도 못건진다고 푸념을 하다가도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고 허풍을 떨며 좋아하는 게 농심 아니던가.

해서, 정작 서너포기를 휘감아 베어 손끝에 맥직하게 달리면 절로 풍년가가락이 뽑혀나오게 마련이었다.

이어 말리고, 묶고, 져나르고 탈곡을 해 가마나 섬으로 곳간에 쟁여놓을 때까지의 그 고된 노역도 어깨춤 속에 건성으로 해치우는 건 물론이었고.

그런데 이 모든 걸 드르륵 한번에 해치워버리니, 신관이 펴진 건 분명 좋은 일일지라도 그 꿀맛 같은 들밥을 나눠먹던 인심조차 엔진소리에 먹혀버린 살풍경은 어쩔 것인가.

밥굶기를 밥먹듯이 하던 시절에도 모두 마음만은 부자로 만들어주던 가을들판의 나눔의 미학. 그래서 고명딸네집보다 낫다던 농투산이들의 흥얼거림이 들리는 듯한데, 이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들판은 말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흐드러지게 넘쳐나는 속에서도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던 현장도 역시 가을 들판이었다.

언제부턴가 배에 기름이 돌면서 사라진 풍경이지만 추수가 끝난 뒤에도 들판에는 늘 이삭줍기 손길이 있었다.

아낙은 행여 검불에 싸여 들어갔을지도 모를 낟알 하나라도 건질 양으로 둥구미를 끼고 앉아 북더기를 까부르고, 코흘리개부터 꼬부랑 노인까지 논바닥을 이잡듯 훑으며 땅거미가 깔릴 때까지 분주하던 그 살뜰한 정경이라니….

국민학교 시절 책보를 행주치마 삼아 동무들과 함께 두어시간 뛰어다니다 보면 금세 한가마니를 채우곤하던 추억이 영화처럼 생생하다.

아- 메마른 가을이 흐른다. 소주빛 하늘이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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